▲ 배유정 삼호중 교사

3월에 발표된 국가수준 성교육 표준안을 보며 앨빈 토플러가 말한 ‘속도의 충돌’을 느꼈다. 드디어 성교육에 대한 관심을 정부가 갖게 되는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만 과연 지금의 현실을 반영할까 걱정부터 앞섰다. 세상의 변화 속도를 역행하여 법에 의해 교실의 현실이 무시당하고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왜 교육청과 교육부는 성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많았는데 이번 표준안을 보면서 ‘이런 관심이라면 사양하겠습니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성교육의 거의 전부가 외부 강사들로 이루어지고 오로지 성희롱 또는 성폭력예방교육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교육의 수요자를 잠정적 미래의 성폭력 가해자 또는 피해자로 보는 것 같다. 이제 아이들도 성폭력예방교육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질려버린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표준안에 대한 논의가 정치적 노선싸움으로 번지고, 진보니 보수니 비방만 하고 있는 지금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시대를 역행하는 것은 말할 것 없고 어른다움은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다. 이번 표준안을 연구·개발한 연구진이 모두 보건과 간호학을 전공한 것으로 드러났고 인문·사회학 전공은 1명도 없었다. 성(性)은 보건이나 간호 쪽 보다는 인문학적으로 원인을 찾고 대안을 모색하려할 때 보다 최선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해부학적 생식기 구조 따위나 호르몬보다 앞서는 것이 인간다움을 아는 것이다. 이 부분이 빠진 표준안은 재미도 없고 이해도 안 가며 읽다보면 괜히 억울하단 생각까지 든다.

연구진에 현장을 아는 성교육 강사나 교사, 학생까지도 포함하여 학생입장에서 ‘교육 받고’싶은 ‘그들이 원하는’ 교육을 했으면 한다. 발표된 표준안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대목이 많았으나 큰 논란이 되고 있는 ‘동성애’에 대해서도 좀 더 넓고 깊은 시각으로 바라봤으면 한다. 동성애를 권장하자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너무 지나친 학교 현장에서 혐오주의로 빠지기 쉬운 인간에 대한 존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소수자 내용을 삭제하고 동성애란 말을 언급하지 말라니…. 남학생 반에는 으레 ‘게이’라 놀림 받는 아이들이 있다. 단지 목소리나 몸집이 여성스럽거나 잘 울고 얼굴이 예쁘면 농담 삼아 던지는 단어이다. 그럴 때 교사는 모른 척 해야 하나? 언급하면 안되니까.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커밍아웃’이나 ‘동성애’ 등의 단어에 대해 아이들의 관심이 높다. 며칠 전에도 바티칸 고위성직자의 커밍아웃이 뉴스 메인창에 오랜 시간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던 제대로 모두 알려줘야 한다.

교육이란 것은 결국 수요자가 선택을 할 때 되도록 더욱 풍부하고 진실된 선택지를 채워주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의 답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지워버린다면 우리 아이들은 선택할 줄도, 나 아닌 다른 누구를 이해할 줄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릴 것이다. 대안이 없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교사보다 어떤 학자보다 최신의 정보를 접하는 학생들에게 죽은 교육으로 외면당할 것인가. 그렇다면 더 이상 교육은 없다. 위기이다.

배유정 삼호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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