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포즈 코아: 포르투갈 - 선사유적의 보존 스토리

▲ 포르투갈 코아강 전경.

포즈 코아는 포르투갈 북동쪽의 코아강과 도루강의 합류점과 가깝고 스페인의 시에가 베르데에서도 멀지 않은 코아강의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유명한 구석기 시대의 야외유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포르투갈 포즈 코아 암각화 유적 보존에 대한 이야기는 코아강에 수력발전을 최초로 계획한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포르투갈 정부는 1959, 1977, 1986, 그리고 1989년까지 수차례 수력발전을 위한 댐건설 계획을 수정 보완해 오다 마침내 1991년에 최종적으로 건설을 확정했다.

1989년부터 시작된 댐건설의 영향 평가와 포루투갈 건축고고학연구소의 현장 조사연구에서 수천 개의 사람과 가축 등이 그려진 암각화가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포즈 코아 계곡은 조사를 거듭할수록 고고학적 가치가 더욱 크게 대두됐다. 조사 과정에서 신석기는 물론 일부 구석기로 추정되는 암각화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포르투갈 학자인 넬슨 라반다 박사가 몇몇 암각화를 외부에 공개하자 이는 포르투갈은 물론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댐건설 추진하던 중 암각화 발견
시민 반대에도 댐 공사 강행하자
국·내외서 댐건설 반대운동 확산
결국 1700억 투입된 댐공사 포기
보존 위해 고고학공원 설립 결정
1997년에는 국가유적으로 지정
이듬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댐건설과 관련해 암각화 학자들 간에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국회에서도 토론이 이어졌으며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을 만큼 뜨거운 이슈로 발전했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에서 선사암각화위원회를 이끌었던 장 클로드 교수는 “암각화 유적 보존이 유럽에서 그렇게 많은 관심과 열정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마 그 때가 처음”이라고 기억한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무시한 채 1994년 10월 댐 건설이 1998년 완공을 목표로 강행되고 있었다. 이는 포르투갈 내에서도 학생들과 시민들이 항의 집회를 여는 등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 포르투갈 코아 계곡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말 암각화.

논란이 확산되자 포르투갈 정부는 객관적인 검증을 위해 유네스코에 전문가 파견을 요청했다. 클로드 교수가 이끈 실사단은 현장을 방문해 ‘최소한 유럽 최대의 야외 선사미술 유적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클로드 교수는 “암각화를 수장시키는 것이 훼손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언급하면서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댐 공사는 계속됐다.

댐공사가 지속된다면 암각화가 물에 잠길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포르투갈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반대 여론이 확산되자 미국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영국 선데이 타임스, BBC 등 해외 언론마저 이를 우려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이후 포르투갈 정부의 요청으로 포즈 코아 유적 보존을 자문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포르투갈로 향했다. 당시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 부문의 책임자로 있던 나를 비롯해 프랑스 건축공공사업연구센터의 알랭 부닌 소장, 국립역사기념물연구실의 자크 브루네 박사, 보르도대학의 수문지질학자인 필리프 말로랭 교수 등이 참여했다.

1995년 2월 국제자문단 일행은 이례적으로 대통령의 초청으로 리스본 대통령 궁에서 마리우 수아레스 대통령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수아레스 대통령은 댐건설과 암각화 보존을 둘러싼 국내 갈등을 언급하면서 포즈 코아 유적에 대한 유네스코의 가감 없는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 보존의 중요성을 청취한 그는 “포르투갈이 부유한 나라는 아니지만 우리 국민들은 선사 유적을 지키기 위해 경제적 혜택의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 암각화 유산이 물에 잠기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당시 시민들의 구호로서 포르투갈 전국의 중등학교에 걸려있던 ‘암각화는 수영을 할 수 없습니다(The Carvings can’t swim)’라는 슬로건을 우리 일행에게 보여주었다. 사안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감안해 3주도 채 지나지 않아 실사보고서를 작성해 포르투갈 정부에 제출했다.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댐건설을 계속하든 중단하든 상관 없이 우선 유적 연구 및 정보센터 마련을 위한 현장 박물관 건립을 제안했다. 또한 코아 강 계곡 주변 환경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국립공원 건립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청했다. 아울러 문화관광 차원에서 암각화 유적을 일반인에게 공개함으로써 댐 건설 취소로 발생하는 비용을 충당할 재원도 마련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보고서는 무엇보다 포즈 코아 유적의 희귀성과 구·신석기 암각화의 존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네스코는 이미 1968년 ‘공공 또는 민간건설공사로 인해 위험에 처한 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권고’를 통해 세계유산을 현 상태 그대로 보호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댐 공사로 행여 계곡이 범람한다면 인류문화유산이 물에 잠기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결국 1995년 여름 새로 선출된 안토니우 구테레스 총리는 “수몰 가능성이 있는 유적의 가치가 적절히 판명될 때까지 댐 건설 공사를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해당 유적이 세계적으로 그 중요성이 확정되는대로 댐 공사가 전면 폐기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포르투갈 정부의 결정은 유네스코 의견과 완전히 일치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경제적으로 중요한 사업을 폐기한 ‘최초의 중대 사례’로 남았다.

▲ 무니르 부셰나키 유네스코 아랍지역 카테고리 II 국장

댐 건설에 반대해 암각화를 보존하려는 국내외 운동은 놀라운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이 결정으로 인해 포르투갈은 댐 공사에 들어갔던 1억5000만 달러(약 1700억원)의 세금 손실을 부담해야 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포르투갈 국민은 그들과 세계 문화유산의 미래를 위해 이를 감수했다.

1996년 포르투갈 정부는 공식적으로 댐건설을 포기했고 문화유산의 관리와 보존을 위해 코아 계곡에 고고학공원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지역의 경제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1억5000만 달러를 제공하기로 했다. 1997년에는 코아 계곡 고고학 유적을 국가유적으로 지정했다. 1997년 6월에는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과 삼파이오 포르투갈 대통령, 그리고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포즈 코아를 함께 찾아 포르투갈 국민들의 이목을 끌었는데 이 자리에서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포즈 코아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1998년 교토에서 열린 유네스코 22차 세계유산위원회는 포즈 코아 유적에 대해 “코아 계곡의 신석기 암각화는 인류 문화 발전의 여명기에 인류의 천재적인 창조성이 급격히 꽃피는 시기를 잘 보여주는 탁월한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인류 초기 선조의 삶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영적 삶을 탁월하게 조명하고 있는 암각화를 유네스코는 기꺼이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무니르 부셰나키 유네스코 아랍지역 카테고리 II 국장

(반구대포럼·울산대공공정책硏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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