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태화강변개발

▲ 1990년대 번영교 공사현장.

도시의 품격은 외관에 의해 많은 부분이 결정된다. 잘 정비된 기반시설과 건축물이 그 도시의 자연을 비롯해서 역사적 유산과 조화까지 이루고 있다면 두 말할 것도 없다. 울산의 도시품격을 이야기 할 때 이 고장의 자연과 역사성을 대표하는 태화강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태화강과 접한 공간과 장소의 질이 결국 울산의 품격을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다.

울산시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6월말 현재 울산광역시의 인구 119만5670명 가운데 태화강과 접하고 있는 각 행정동과 읍, 면에서 살고 있는 주민 수는 48만2528명이다. 울산시 전체인구의 40.4%가 태화강변과 맞닿은 마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태화강은 울산문명이 싹트고, 그리고 꽃 핀 주 무대다. 굳이 신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장생포만호진성, 염포영성, 개운포만호진성이 태화강의 입구인 울산만과 그 부근에 자리 잡았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1989년 한라궁전아파트 시작으로
54층 높이 태화강엑소디움까지
태화강 수질·경관개선을 독식하는
태화강변의 빽빽한 아파트단지들
더 늦기전에 태화강변 토지들을
가능한 한 공공용지로 만들어야
울산의 품격을 지킬 수 있을것

사람이 많이 살고 있다는 말은 집도 많다는 의미다. 울산시 중구 동쪽 끝 지역에는 신라 말 이후에 축조된 계변성, 울주성, 병영성, 울산읍성, 왜성 옛터가 있고, 울산유일의 사액서원인 구강서원이 있었으며, 임진왜란 이전에는 울산향교도 이곳에 있었다. 이들은 지난 천 년 간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태화강 문명의 중심시설이다. 울산 향토사학을 꽃피웠던 이유수 선생은 조선시대 울산호적 연구를 통해서 반구동과 학성동이 최고 인구밀집지역이었다고 했다. 범위를 태화강 너머 강남과 강 상류지역으로 이동해 가면, 삼산의 벽파정과 태화루, 만회정, 입암정, 관서정, 집청정, 백련정, 작천정과 같은 누정건축이 있고, 언양읍성과 언양향교, 반구서원은 물론 대곡천의 암각화 유적이 있다.

▲ 태화강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런데 울산의 원점이자 울산문명의 중심인 태화강은 일제강점기때 있었던 울산수리조합사업으로 모습과 성격을 크게 바꾸었고, 이어서 1962년부터 울산공업센터로 개발되면서 수질오염과 강변개발로 옛 모습을 잃기 시작했다. 이런 태화강이 되살아난 것은 광역시 승격후의 일이다. 지난 10여 년 간 울산시가 1조원이 넘는 재원과 행정력을 쏟아 부은 결과 태화강의 수질만큼은 제대로 살려 놓았다, 이미 60년대 후반부터 생활하수로 오염되어 여름철이면 코를 막고 지나쳐야 했던 강물이 맑아지고, 언제부턴가 사라졌던 백로며 떼까마귀도 다시 찾아들면서 생태적으로도 건강한 강으로 거듭나고 있다. 또 한 가지 평가할 일은 태화루 중창이다. 400여년 지역민의 염원을 풀어준 이 일은 아파트단지 개발을 막고 태화강변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었다는 의미에서 역사적 사건이다.

그런데 이런 바람직한 변화 속에서도 최근의 태화강변 풍경을 바라보면 우려를 넘어 절망하게 된다. 바로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는 강변 고층 아파트단지 때문이다. 아파트단지가 태화강변에 들어서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첫째, 강변 풍경을 가로막기 때문이고, 둘째, 도심에 불어드는 강바람을 막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강변의 공적인 토지이용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세 가지는 모두 오랜 시간이 흘러도 회복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절망적이다. 이처럼 태화강변에 들어서고 있는 아파트단지는 그간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얻어낸 수질개선과 경관개선의 과실을 독식하고 있다.

그럼 태화강변에는 언제부터 아파트단지가 들어섰을까. 먼저 인터넷지도를 이용해서 강 상류인 상북면에서 하류인 울산만의 방어동까지 강변에 접하고 있거나 강변에서 가장 가까운 100세대 이상의 아파트단지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 보았더니 34개 단지에 2만1091가구나 되었다. 구영리보다 상류지역에는 4개 단지 뿐이고, 나머지 30개 단지가 모두 구영리부터 하류에 있다.

다음으로 태화강변에 10층 이상의 고층아파트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알아보았다.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1989년 12월에 입주를 시작한 중구 태화동 동강병원 옆 15층 규모 한라궁전아파트다. 이보다 2년 뒤인 91년 10월에는 인근 명정천 옆에 13층 높이 전원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했고, 맞은편 태화강 건너 남산을 가로막고 선 15층 높이 크로바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한 것은 90년 7월이었다. 비슷한 시기인 1991년에는 동천강변 반구동 한라그랜드아파트에서는 공사 중에 발견된 신라시대 토성 때문에 긴급 발굴조사를 하고 있었다. 태화강변에 본격적인 아파트 건립이 시작된 것이 1990년을 전후한 시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난 글에서 다룬 삼산동의 경우는 1986년에 도시계획이 변경되면서 생산녹지가 주거 및 상업지역이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87년 12월에는 삼산도시설계가 성안되었다. 윤세달 시장 재임 때 만들어진 이 보고서에 그려진 삼산신시가지 모습 그대로 삼산현대아파트, 삼신현대아파트, 삼산선경아파트, 달동현대 1차아파트 부지가 결정되었고, 실제로 완공되었다. 삼산현대아파트는 삼산지역 최초로 90년 12월에 입주를 시작한 13층 높이 962가구 규모 아파트단지다. 평창현대3단지 아파트는 23층 높이로 95년 10월에 입주가 시작되었다. 삼산본동지구에 들어선 세양청구아파트는 97년 12월에 입주를 시작했는데 높이는 당시까지 최고인 25층이었고, 세대수도 최대인 1562가구였다. 이어서 벽산강변아파트와 삼산푸르지오, 아데라움 아파트 등이 2005년까지 연이어 들어서면서 삼산동 강변풍경은 일변했다.

특히 2009년 이후가 되면 태화강변 풍경은 또 한 번 큰 변화를 맞는다. 2009년 2월에 입주를 시작한 중구 성남동 롯데캐슬스카이 아파트 높이가 무려 41층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롯데 바로 옆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 옥교동 태화강엑소디움은 현재까지도 울산지역 최고 높이인 54층을 자랑한다. 이때부터 불과 2년 동안 우정동에는 마제스타워 1, 2차 단지가, 신정동에는 두산위브더제니스와 태화강 엑슬루타워가 연이어 들어섰다. 모두 높이는 35층 이상 초고층이다.

▲ 한삼건 울산대 디자인·건축융합대학장

그 뿐 아니다. 주상복합 아파트가 마지막 입주를 시작한 2011년에는 1960-7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단독주택지가 조성되어 있던 신정3동 강변지역에 재개발아파트단지가 준공되어 입주를 시작했다. 최고 층수 25층의 강변센트럴 하이츠다. 기존의 저층 아파트단지나 단독주택지가 재개발되면서 더 높고 더 많은 세대수를 가진 대규모 단지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최근 가정으로 배달되는 광고지를 보면 울산은 가히 아파트개발 러시를 이루고 있다. 앞으로 삼호동, 우정동, 성남동, 옥교동 등지를 사업지구로 하는 이들 광고 속의 아파트단지마저 준공된다면 태화강변은 아파트단지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더 늦기 전에 태화강변을 현재의 시민은 물론 미래의 울산시민에게 돌려주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 방법은 태화강을 끼고 있는 토지 가운데 가능한 한 많은 면적을 공공용지로 지켜나가는 것이다. 모두의 땅이었던 강변의 미개간지가 사유 농지가 되고, 이어서 아파트단지로 바뀌는 토지이용을 근간으로 하는 지금까지의 도시계획은 반성되어야 한다. 한 번 아파트단지로 변한 강변은 미래의 울산시민이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입해도 다시는 공공용지로 되돌릴 수 없게 된다.

태화강은 울산 역사의 중심무대였고, 지금부터는 도시 품격의 바로미터 역할을 할 것이다. 죽은 강물도 살려 낸 우리 세대가 강변풍경이 아파트단지로 뒤덮이는 일을 방치해서 스스로의 품격을 깎아내리는 일을 더 이상 두고 보아서는 안 된다. 태화강변의 아파트개발을 막고, 대신 공공시설 입지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특단의 대책이 지금 필요하다.

한삼건 울산대 디자인·건축융합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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