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 스토리 : 감의 계절, 청도는

 

마을이 온통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뒷산, 골목, 담벼락, 길모퉁이에 올해도 감이 송골송골 열렸네요.
감나무는 노랗던 감을 새 색시 볼마냥 불그레 물들이고 있습니다.
10월말 청도는 구석구석에 꼬마전구 불이 켜진듯 합니다.
가을햇살 따사로이 내리쬐지 않았다면 꼬마전구 불을 켜둔줄 감쪽 같이 속을뻔 했지요.
단풍 든 잎사귀 속에서 주렁주렁 얼굴 내민 모습은 나뭇가지 비틀어따지 않더라도 눈으로도 배가 부릅니다.
그토록 추웠던 어릴적 어느날, 어머니는 아랫목에 숨겨두었던 홍시를 건네주시곤 했지요.
살살 껍질을 까서 주시거나 숟가락으로 퍼서 먹여주시던 감을 보면 그 속에는 말랑말랑 숨어익은 모정이 느껴집니다.
지금은 달고 맛있는 감을 먹고는 난 아들 앞에서 시치미를 뚝 뗄지도 모릅니다.
서리 내리고 나면 빨갛게 익어가는 감은 덩그러니 나무꼭대기에서 아련한 추억같은 까치밥으로 남겠지요.

연간 5만7천여t 생산하는 청도
씨없고 납작한 ‘반시’로 유명세
육질 부드럽고 당도 높아 인기
건시·식초·차 등 가공품도 많아
실제 터널을 개조한 ‘와인터널’
반시로 만든 감와인 즐길 수 있어

감이 익어갈 즈음이면 경북 청도가 떠오른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청도 전역이 주홍색 감으로 한창 무르익고 있다. 울산과 가까운 매전면 일대를 비롯해 와인터널에 인접한 화양읍, 철가방극장이 있는 풍각면 등 동서남북 어딜 가더라도 감이 지천으로 널렸다. 감색은 껍질의 카로티노이드 색소의 영향 때문이다. 짙은 주황색인 리코핀의 함유량은 가을의 일조조건과 관계가 있다.

▲ 청도군 풍각면의 한 과수농가에서 반시의 선별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박철종기자

따사로운 햇살 아래 긴 장대를 들고 감을 따는 손길이 풍요롭고 느긋하다. 감나무 옆에 준비해 둔 부대며 바구니가 어느새 감으로 가득 찼다.

올해는 태풍의 영향을 덜 받아 수확량이 평년보다 많다고 한다. 청도군의 감 재배면적은 2156㏊(헥타아르), 재배농가는 5331가구이며 연간 5만7478t을 생산하고 있다.

청도의 감은 전국적으로 반시(盤枾)로 잘 알려져 있다. 씨가 없고 모양이 쟁반처럼 납작해서 반시라고 부른다. 모양은 평방형이며 감 1개의 무게는 180g안팎이다.

▲ 청도 와인터널에서 숙성시켜 시판되는 감와인.

청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씨 없는 감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이곳의 감을 다른 지역에 가져다 심으면 씨가 생긴다는 사실은 기이하다. 청도 반시가 주로 암꽃만 맺는 감나무 품종이고, 지역 내에 수꽃을 맺는 감나무가 거의 없어 수정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분지형태의 산간지역이어서 감꽃 개화기인 5월에 안개가 짙어 벌의 수분활동을 저해하는데, 일부 수분수(受粉樹)의 수분활동도 방해하기 때문에 씨 없는 반시가 된다고 한다.

감은 예로부터 ‘신(神)의 과일’이라 불려져 왔다. 청도 반시의 역사는 16세기 중반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 세월마을 출신인 일청제 박호(朴虎)로부터 시작된다. 조선 명종1년(1545) 박호는 평해군수로 재임하다 귀향하면서 그곳 토종 감나무의 접수를 무 속에 꽂아 가지고 와서 청도 감나무에 접목한 것이 유래다. 이곳 토질과 기후에 맞아 새로운 품종인 세월반시가 나왔다가 현재의 청도반시가 되었다.

▲ 청도 전역에 주홍색 감이 주렁주렁 열려 수확이 한창이다. 사진= 청도군청 제공

지금도 청도 세월마을에는 수령 150여년의 감나무 2그루가 있다. 청도군을 대표하는 과목이며 전역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청도 가을은 붉은 감으로 장관을 이룬다.

청도 반시는 육질이 유연하며, 당도(20˚)가 높고 수분이 많아 각광받고 있다. 무기성분이 풍부하고 비타민류와 구연산이 많은 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매일 1개를 먹으면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류 섭취량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감꼭지(시상)를 말려 딸국질에 다려 먹었으며, 땡감의 즙액은 뱀, 벌, 모기에 물린데 바르기도 하는 등 민간약으로도 쓰였다.

청도 반시는 염색 재료로도 아주 적합하다. 수분 함량이 많고 씨가 없기 때문이다. 갖가지 빛깔의 염색물에 담가보고 싶은 충동도 일어난다. 감물 염색 원단은 코팅효과가 좋아 비를 맞거나 땀에 젖어도 옷이 몸에 잘 달라붙지 않는다. 잘 씻고 펼쳐서 바람에 말리면 울긋불긋 나만의 손수건을 가질 수 있다는 상상은 즐겁다.

청도 반시를 구경하러 가는 길에 와인터널도 둘러볼 일이다. 와인 숙성의 최적지로 사계절 내내 섭씨 15℃를 유지하는 곳이다. 유럽 와인 브루어리처럼 숙성고를 견학하고 숙성고에서 와인과 특화된 안주를 즐길 수 있다.

청도 와인터널은 대한제국 말기에 완공된 남성현 터널이었다. 전체 규모는 길이 1015m, 너비 4.5m, 높이 5.3m이며, 직육면체의 화강암과 적벽돌을 3겹의 아치형으로 건설했다. 실제로 기차가 다니던 이 터널은 청도반시로 만든 세계 최초의 감 와인 터널로 탈바꿈했다. 1905년 경부선 철도로 개통됐지만, 급경사와 먼 운행거리 등으로 1937년 평탄하고 직선 노선인 남성현 상행선이 개통되면서 사용 중지됐다.

한편 청도반시는 반건시, 감말랭이, 곶감, 아이스 홍시, 감와인, 감식초, 감 초콜릿, 감 화장품, 감잎차 등 다양한 가공품으로도 나오고 있다.

글=박철종기자·사진= 청도군청 제공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