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 대신 결과·등수 집착하다 보니
경쟁문화에 매몰돼 스트레스 시달려
공부든 봉사든 즐길 때 성과 더 좋아

▲ 김혜준 (사)함께하는아버지들 대표

과학의 어머니는 대장(大腸)이 아닐까? 평소 소화기가 신통치 않아서 새로운 유산균 제품이 나오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불량 소화기관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필자는 꽤 과학적인 사람으로 성장했다. 매일같이 변기에 앉아서 과학적 추론을 하니 말이다. ‘어제 뭘 먹었더라…?’ 그리고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조상들의 지혜를 떠올리며 무릎을 치곤 한다. 논산훈련소에서 신병훈련을 받을 때를 돌이켜봐도 쌩쌩 돌아가는 소화기관들이 일사분란하게 입력과 출력의 인과관계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스(gas)로 증명해주었던 것이다. 더욱이 이런 과학적 추론이 진행되는 장면이 매우 예술적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식의 과학적 추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한국에 과학이 일상화돼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매년 찬바람이 불 때면 과학과 관련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곤 한다. 바로 노벨상 수상자 소식이다. 그 소식이 안타까운 이유는 노벨상 수상자에 한국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실을 대하는 언론과 정부의 태도 때문이다. 한결같이 노벨상을 못 받아서 안달복달하는 정서를 깔고 있으니 말이다. 급기야 기초과학연구원에서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위해 20, 30대 젊은 과학자 1000명을 뽑아 10년간 8000억 원을 연구비로 지원하는 ‘넥스트 디케이드-100(Next-decade-100)’ 프로젝트를 정부에 건의했고 그렇게 시행될 모양이다. 웬만한 건 우리도 다 해봤는데 노벨상을 구경도 못해봤으니 이해는 간다. 더욱이 이웃 일본에서는 올해 2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24명이나 수상했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아니 할 말로 노벨상 그거 못 받았다고 죽고 못 사는 것도 아니다. 꾸준히 기초과학에 투자하고 육성하다보면 받을 수도 있고 ‘아니면 말고’ 아닌가? ‘노벨상도 받을만한 일’이 아니라 ‘노벨상 자체’를 정책의 목표로 한다는 건 넌센스이고, 모양도 많이 빠진다.

그런데 뭐든지 정부에게만 공과를 돌리는 발상도 좀 바꿔야 한다. 정부든 뭐든 국민의 수준에 꼭 맞는 처신을 하기 때문이다. 사실 과정이나 내용은 어찌 되었건 결과나 등수가 전부라는 발상은 우리 모두에게 만연한 마음의 병이다. 통계를 좀 보자. OECD에서 중3을 대상으로 3년마다 국가간 학력비교조사연구를 발표하는데, 우리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최상위권인 반면 ‘학업흥미도, 동기부여, 자기주도학습능력’ 등은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한국학생 비율은 하버드 입학생 1600명의 6%인데, 하버드의 낙제생 중 한국학생의 비율은 90%라고 한다. 또 글로벌 컨설팅기업 타워스 왓슨의 2010 글로벌 노동력 보고서(Global Workforce Study)를 보면 ‘자신의 업무에 별로 몰입하지 않거나, 마지못해 일하는 직장인 비율’이 조사대상 국가 평균치(38%)에 비해 한국(48%)이 높았다. 또 회사에 대한 자발적 충성도는 평균치(21%)에 비해 한국(6%)은 저조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발적이기보다는 타율적이고 동료와의 경쟁에만 몰입한 결과, 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경쟁(race)문화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젠 ‘국영수, 1등, 스펙’ 같은 것에 목매지 말고 ‘과정’을 ‘즐기는’ 노력을 좀 하자. 공부든 봉사든 연구든 즐겁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할 때 대박도 나는 법이다. 나부터, 집안에서부터, 뭐든 좋아서 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 과학적으로….

김혜준 (사)함께하는아버지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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