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린 생활에 지쳤다”…“후배들은 균형있는 삶 권하고파”
아들 유치원 보내면 레슨코치 꿈 도전…“방송 해설에도 관심”

 “필드가 그립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골프를 떠나지 못합니다.”

뛰어난 실력뿐 아니라 빼어난 외모로 골프팬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필드의 패션모델’ 서희경(29)은 선수 생활에는 마침표를 찍었지만 나머지 인생에서 골프를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6일 부산 기장군 해운드비치 골프앤드리조트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ADT캡스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선수가 아닌 중계방송 해설자로 나선 서희경은 “해설가라기보다는 선수 입장에서 주로 얘기했다”며 아직은 은퇴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문을 뗐다.

그는 이 대회에 앞선 지난 4일 10년 동안 선수 생활을 접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005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서희경은 2008년 6승, 2009년 5승을 올리면서 KLPGA 투어의 간판 선수가 됐다. 2009년 KLPGA 투어 대상과 상금왕, 다승왕, 평균타수 1위를 석권한 서희경은 2010년 초청 선수로 출전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KIA 클래식에서 우승해 2011년 LPGA투어에도 진출했다. LPGA투어 신인왕에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서희경은 그러나 결혼과 출산으로 잠깐 떠났던 필드에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올해 초 몇 차례 대회에 출전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이 없었다.

6월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이후 대회 출전을 중단한 서희경은 “조용히 사라지려 했는데 주변에서 자꾸만 왜 대회에 안 나오냐고 해서 은퇴를 공개적으로 발표했다”고 말했다.

서희경은 “몇년 전부터 선수 생활을 계속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면서 “경기에 나가서 선수로 뛰는 게 즐겁지 않았고 열정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어릴 때부터 오로지 골프에만 매달린 채 여유라곤 찾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탓에 일찌감치 심신이 고갈되어 버리는 ‘번아웃(burn out)’ 사태가 빨리 찾아온 것 같다고 서희경은 설명했다.

서희경은 “사회 나가면 서른도 안된 나이라면 어리다는 소리를 들을텐데 투어에서는 20대 중반만 되어도 ’노장‘ 소리를 듣는게 현실 아니냐”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는 “골프말고는 다른 게 없는 삶, 항상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마치 눈 옆을 가리고 앞만 보고 뛰는 경주마 같은 삶을 살았다”면서 “후배들에게 그런 ’번아웃‘을 피하려면 앞만 보고 가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살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취미를 가지라고 권한 서희경은 “취미 있다고 골프를 등한시하지만 않으면 오히려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서희경이 은퇴를 결심한 배경에는 15개월 된 아들도 있다.

“대회를 나가도 아들 얼굴이 자꾸 어른거리고 집중이 안됐다”면서 “육아와 선수 생활을 병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고 서희경은 고백했다.

투어 선수로 뛰면서 세 자녀를 키운 ‘골프맘’ 줄리 잉스터(55)의 조언도 한몫했다. 프레지던츠컵을 보러 갔다가 만난 잉스터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잉스터는 “필드가 그립냐”고 서희경에 물었다. 서희경이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하자 잉스터는 “골프보다 더 행복하다면 은퇴하라”고 단호하게 말해줬다.

서희경은 “나를 좋아하고 내 플레이를 보고 싶어하는 팬들에게는 정말 죄송스럽다”면서 “은퇴한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 ’의지박약‘이라고 꾸짖는 분도 있었지만 내가 행복해지는 게 우선이지 않나 싶다”고 거듭 은퇴의 변을 밝혔다.

딸을 최고의 골프 선수로 키우기 위해 반평생을 헌신한 부모님 역시 아쉬워하면서도 은퇴 결정에 “네가 행복해지는 게 먼저”라며 흔쾌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하지만 그는 “골프를 떠나진 못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후배 양성하는 게 꿈”이라는 서희경은 “아이가 다섯살 쯤 되면 공부도 하고 재미있게 잘 할 수 있는 레슨 코치로 나서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장래 희망을 드러냈다.

방송 해설도 처음 해보니 도전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인자의 자리에 올랐던 서희경이지만 아픔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도 꺼냈다.

서희경은 “실력도 없는데 예쁜 선수라고 주목을 받는 건 싫었다”면서 “나는 외모에 자신이 없어 어디를 성형할까 고민도 많았다”고 뜻밖의 사실을 실토하기도 했다. 남편도 “나더라 ’못난이‘라고 놀린다”고 깔깔 웃었다.

데뷔할 때는 우승하고도 남을 실력이었다고 자부했는데 3년차 때까지 우승을 하지 못해서 엄청 서러웠던 기억도 떠올렸다. 첫 우승을 하고 나서는 자신감이 생겼고 “정말 안 되는 샷이 없었다”고 전성기 때를 회상했다.

서희경은 “(신)지애, (이)보미, 그리고 (김)하늘이 내가 인정하는 최고 선수”라면서도 “요즘 활동하는 후배 선수 중에는 (전)인지가 단연 낫더라”고 평가했다.

ADT캡스챔피언십에서 두번이나 우승한 서희경은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방송 해설에 이어 대회장에서 팬 사인회를 열어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