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빅딜로 화학부문 울산사업장 정리
창조경제로 위기탈출 꾀하는 울산으로선
든든한 IT산업 진출기반을 잃어버린셈

▲ 김창식 디지털뉴스팀장

대기업 간 자율 ‘빅딜(Big Deal·대규모 거래)’이 한창이다. 창업 1세대를 지나 2,3세대로 이어는 후계구도, 사업재편 등과 맞물리면서 특정 사업에 역량을 모으기 위한 ’선택과 집중’식 구조조정이 몰아치고 있다. 생존의 위기감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재계 서열 1위 삼성은 최근 롯데와 또 한차례 빅딜을 단행,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석유화학 산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삼성은 한화(1조9000억원), 롯데(3조원)에 화학부문을 넘기면서 취약사업 정리와 함께 5조원 규모의 실탄을 확보했다. 한화와 롯데그룹도 몸집을 대폭 불려 ‘윈 윈’하는데 성공했다.

삼성은 두차례의 빅딜로 울산에 있던 화학사업장을 깨끗이 정리했다. 특히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이 1964년 울산에 세운 삼성정밀화학(한국비료)까지 매각한 것은 시사하는바 크다. 삼성정밀화학은 1966년 정부의 정치자금 관련 ‘사카린 밀수사건’에 휘말려 국가에 헌납한 뒤 27년만에 되찾아 온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회사다. 산업수도를 자부하는 울산에는 이제 삼성의 흔적은 전기차 배터리 등을 생산하는 삼성SDI 부산공장 뿐이다.

삼성의 울산 이탈은 단순히 재계 1위의 기업이 떠나가고 5위 롯데와 10위 한화가 새로운 기업의 주인이 되는 최대주주 변경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기업의 상징적인 측면에서 울산은 삼성의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을 잃는 대신 롯데 창업주 신격호 회장과 한화의 창업주 김종희 회장을 얻었다. 호암은 ‘인재 제일주의’의 경영철학로 평생을 두고 실천, 그 핵심 DNA를 이건희­이재용으로 계승시킨 삼성가의 창업주이자 뿌리이다. 삼성 신화의 밑바탕에는 인재제일주의로 요약되는 인재경영이 자리잡고 있다. 3대 주력산업(자동차, 석유화학, 조선)의 침체로 창조경제가 필요한 울산으로서는 위기를 탈출할수 있는 중요한 해법을 가진 기업을 놓친 셈이 되고 말았다.

반대급부도 있다. 울산은 향토출신(울주군 삼동) 기업인 신격호와 롯데를 다시 얻은 격이 됐다. 신격호는 식민지시대 일본인들의 갖은 차별과 편견을 딛고 기업을 일으키고, 60년대 조국 근대화를 주도한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하지만 고향 울산에 이렇다할 생산 사업장을 두지 않아 고용과 지역사회 기여도 측면에서 지역민들의 아쉬움을 남긴 터 였다. 한화그룹을 세운 김종희 창업주의 경영철학은 ‘신용과 의리의 리더십’으로 유명한 김승연 회장을 통해 그 맥을 잇고 있다.

또다른 측면에서 삼성의 울산이탈은 굴뚝산업(화학) 산업을 지키는 대신 미래산업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격이 됐다. 울산은 이제 삼성발 IT산업 진출기반을 완전히 잃게 됐다. 이는 울산이 IT 기반의 지식기반경제로 나아가는 길이 막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기존 전통산업에 IT를 융합해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데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는 일이다.

혹자들은 삼성의 이탈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비관적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삼성이 울산을 떠난다고 해서 지역경제에 당장 큰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울산에는 여전히 도전과 열정의 리더십으로 상징되는 아산 정주영 회장, SK그룹 창업주인 최종건·최종현 회장, LG 구인회 회장의 창업정신을 이어받은 기업들이 건재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삼성이 빠져나가는 울산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크다는 느낌이다. 주력산업이 휘청대는 울산은 국내에서 가장 큰 투자자이자, 세계적인 IT기업을 잃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김창식 디지털뉴스팀장 goodgo@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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