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영진 사회문화팀 차장

미국 뉴욕의 휘트니미술관은 전세계 미술관 중 가장 뜨겁다. 미술관은 원래 조각가이자 콜렉터였던 거트루드 반더빌트 휘트니(1875~1942) 여사가 1930년에 설립했다. 유럽 미술이 전 세계를 지배할 때 에드워드 호퍼, 제스퍼 존스와 같은 미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을 그 자리에 올리면서 세계 미술계의 판도를 바꾼 주역이다. 이 미술관이 지난 5월 새 공간을 마련해 이전했다. 새 부지는 뉴욕 맨해튼의 미트패킹. 화물 철도를 개조한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과 허드슨 강을 앞뒤로 두고 있다.

이 공간이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의 대형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공식을 과감히 깨버렸다는데 있다. 지난해 연말 아담 D 와인버그 관장이 방한했을 때 그는 ‘너무 크지 않은(not too big) 미술관’이 건축물의 콘셉트라고 말했다. 각 국의 전시공간이 경쟁적으로 ‘더 넓게!’를 주장하는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비좁은 도심 속을 비집고 들어앉는 만큼 ‘이웃을 배려하는 미술관’이 되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미술관으로서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좇기 이전에 이웃한 건물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홀로 우뚝 선 건축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처럼 보이도록 계단식 외형으로 마감했다. ‘미술관 = 어두운 실내’라는 공식을 깨버리고 외부의 빛을 실내로 끌어들이는데 주력했다. 다운타운 미술관의 지평을 연 휘트니미술관에서는 미국현대미술 발자취를 더듬는 기념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몇년 간 울산시립미술관을 상상할 때마다 울산도 이같은 미술관을 갖게될 것이라 철석같이 믿어왔다. 예정부지에서 울산객사 유구가 뚜렷하게 드러났을 때도 목표기한인 2017년 보다는 다소 늦춰지겠지만 그래도 1~2년만 더 기다리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 돌아가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울산시가 시립미술관을 지으려던 북정공원 부지 대신 새로운 곳을 탐색하겠다고 밝히면서 그랬다. 부지가 좁아서 제대로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는 이유다. 불과 5개월 전 ‘부지를 옮기는 건 미술관을 짓지 말자는 것이나 진배없다’는 울산시 간부 공무원의 발언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상황이 빚어졌다. 시는 기존 부지를 포함해 모두 9개의 부지를 새로 제안했다. 현 부지로 결정을 내리기 전 논쟁에 논쟁을 거듭하던 몇년 전의 과정을 또다시 되풀이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원도심 주민들이 단체항의에 나섰지만 시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그러면서 기막힌 단서를 하나 더 달았다. 의견수렴에 기한을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심사숙고하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숨막히는 단서가 또 있을까 싶다. 논란이 종결되지 않으면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조금 더 삐딱한 눈으로 바라보면 울산시의 입장에 꼭 맞는 결론으로 귀결돼야 이 사단이 끝난다는 말처럼 들린다.

사력을 다 한 마라톤 선수가 결승선 앞에서 ‘규정이 바뀌었으니 선수 자격을 줄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 심정이 어떨까. 미술관 첫 삽을 기다리던 원도심 주민들 마음이 이와 무엇이 다를까 싶다.

홍영진 사회문화팀 차장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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