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박상진’ 서울 국립극장서 공연
저평가 받고 있는 박 의사의 삶 재조명
울산이 충절의 도시로 거듭나는 계기로

▲ 김영조 위동해운 여객팀장 재경울산향우회 운영위원

대한민국의 11월 셋째주 목요일은 언제부터인가 이 땅의 수험생들에게는 운명의 날로 사회적 약속이 정해진 잔인한 달이 되었다. 몇주 전 전국 85개 시험지구 1212개 시험장에서 대학수학 능력 시험을 치른 63만여 명의 수험생들에는 희비의 명암이 교차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해 마다 수능시험 후에는 시험과목의 난이도에 대한 평가와 입시전략을 소개하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매스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 많은 기사들 가운데 중학교 입학 전 한국 전쟁이 발발해 학업을 포기하고 75세에 대학 진학의 꿈을 키우다가 79세에 비로소 최고령 응시생이 된 어느 할머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시간이 있는 데까지, 끝까지 해 보려고 한다”는 인터뷰는 내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프랑스의 어떤 철학자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란 뜻으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필자도 학력고사 세대인데 그 분은 인생의 황혼기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손자뻘 수능세대와 같이 또 다른 선택과 도전을 시작했으니 필자보다 앞선 신세대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최고령 수능 응시생의 사연이 잔잔한 감동을 준 기사였다면 고향의 지역 신문을 통해 접한 울산의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에 관한 소식은 가슴을 한껏 고동치게 했다.

일제하 최초의 판사 임용을 거부하고 항일 구국의 선봉에 섰던 울산출신 독립운동가, 고헌 박상진 의사의 삶을 재조명한 창작오페라 ‘박 상 진’이 대한민국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으로 선정돼 서울 무대에서 보게 된 감회는 감개무량(感慨無量)하기 그지없다. 오페라 ‘박 상 진’은 지난 2008년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초연했고 이후 2011년 대구 국제오페라축제에 초청됐으며, 2014년에는 중국 창춘(長春)에서 해외공연을 가졌고 올해에는 11월14일 오후 7시30분과 15일 오후 3시30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서 막이 올랐고 커튼콜의 찬사를 받았다. 최근 들어 광복 70주년을 맞아 그간 무명지사와 다름없던 독립운동가들이 재조명되는 기회들이 많았지만 박상진 의사의 경우는 울산지역에서는 비교적 많이 알려지고 오페라로 공연되기도 하고, 생가도 복원되는 등 그와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행보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서 다행이지만 중앙의 무대에서 알려지기는 처음인 듯하다.

대한광복회라고 하면 김좌진 장군을 가장 먼저 떠올릴 만큼 역사적으로 저평가 받고 있는 안타까운 인물이 박상진 의사가 아닐까. 1884년 12월 울산시 북구 송정동에서 밀양사람인 승지 박시규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상진 의사는 일제치하에서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대한광복군의 총사령이 되어 항일 투쟁을 펼치던 중 모친의 장례식에 참석하였다가 1917년 2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8월 대구에서 순국했다. 인생에 있어 자신의 선택이 없는 두번의 경우, 그것은 탄생과 최후일 것인데 의사는 민족을 위해 B(Birth)와 D(Death)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한 분이다. 생가를 복원해 역사공부의 현장으로 활용하고 추모사업회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 잘 관리 되고 있는 것을 보니 이방인(異邦人)의 한 사람으로서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

송정 박상진 호수공원도 작년 4월 개장 후 방문객들이 증가해 불편한 진입도로 확장사업을 한다니 쾌재를 부를 일이다. 성공적인 이번 서울 공연을 위해 사력으로 동분서주 애쓴 고헌 박상진 의사 추모사업회에 사의를 표하며 울산이 충절과 문화 관광도시로 더욱 거듭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김영조 위동해운 여객팀장 재경울산향우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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