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하는 날은
세상에서 제일 큰
밥상보를 만드는 날입니다

황새가
이리저리
훨훨 날아다니며
치수를 잽니다

아빠는
이앙기로
탈탈탈탈
초록 천을 펼칩니다

엄마는
못짐을 들고
논둑을 따라
시침질이 한창입니다

때마침 내리는 비가
은침으로 박음질을 끝내면
들판은 세상에서
가장 큰 밥상보입니다

한 여름 땡볕을 견디고
가을 햇살이 익을 무렵
저 큰 밥상보를 가만히 들추면
푸짐한 밥상이
들판 가득 차려지겠지요

 

[당선소감-김종훈]창작의 원천이 된 고향과 가족에 감사

▲ 김종훈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신문사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당선을 확인하는 통화를 했는데 무슨 말이 오갔는지 기억이 뚜렷이 나지 않는다. 그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 공부를 하면서 동시를 쓰고 싶다는 소망은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다. 아이들 덕에 밥을 먹고 있지 않는가. 아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언젠가는 갚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뿌듯하다. 내 이름이 박힌 동시집을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같은 길을 걷는 동인 ‘보석상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지난 한 해 동안 동시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무엇보다 많이 쓸 수 있었다. 신문사에 어느 것을 보낼지 행복한 고민을 했다. 당선은 보석상자 덕분이다. 다음을 빛낼 주인공은 분명히 보석상자다.

어릴 때는 농촌에 사는 것이 불만이었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늘 부러웠다. 이제는 내 시의 원천인 고향이 고마울 뿐이다. ‘모내기’도 내 고향이 농촌이 아니었으면 쓸 수 있었을까. 고향처럼 내 시의 밑바탕이 되는 가족도 마찬가지다. 흔들릴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이었다. 오랜만에 가장 노릇을 한 거 같아 뿌듯하다.

발 붙이고 사는 동네에서 상을 받게 되어 더욱 기쁘다. 자리를 펴 준 경상일보에 감사를 드린다. 심사위원님께는 멋진 동시로 바른 선택이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
-약력-
●진주교육대학 졸업
●(현)울산초등학교 교장
●공무원문예대전 시·동시 최우수상 수상
●동아일보,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심사평-신형건]아이들 마음 잘 헤아리는 시인이 되길

▲ 신형건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대부분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동시인들뿐 아니라 일반시나 소설을 쓰던 시인과 작가들까지 동시 쓰기에 가세하며 동시가 비중 있는 문학 장르로 인식되기 시작한 최근 문단 분위기를 반영하듯 응모자들의 동시 창작 열기 역시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완성도와 시적 개성을 두루 갖춘 작품들을 고르다 보니 최종적으로 여섯 명의 작품이 남았다.

박미라의 ‘80살 차이’와 김미영의 ‘이사한 베고니아’는 아이들이 쉽게 공감하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지만, 뚜렷한 시적 개성을 아직 확보하지 못해 아쉬웠다. 정경란의 ‘메밀꽃’은 ‘어린왕자’가 지닌 고유한 정서와 메밀꽃이 환기하는 토속적인 정서가 어울려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그 이상의 폭과 깊이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미상의 ‘찐빵 학원에서’는 찐방 가게와 영어 학원을 연결한 발상과 표현이 독특했지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만한 요소가 부족했다.

그리하여 최대영의 ‘우리 마을 파밭’과 김종훈의 ‘모내기’가 끝까지 남았다. 두 작품 다 평범한 제재를 다루고 있지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진정성을 지니고 있었다. 시인 자신이 겪은 체험을 과장하지 않고 고스란히 시적 표현으로 옮기는 작업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춘문예의 최종 당락은 한판 승부와 같아서 좀더 풍요롭고 뚜렷한 작품 ‘모내기’의 손을 들어주게 되었다. 당선작은 동심적 발상과 선명한 이미지가 잘 어우러져 생생하고 역동적인 풍경을 독자들의 마음에 각인하는 좋은 동시이다. 늘 아이들 마음을 잘 헤아리는 훌륭한 시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약력-
●1984년 ‘새벗문학상’ 동시 당선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어린이도서상, 서덕출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등 수상
●동시집 <거인들이 사는 나라> <입김><바퀴 달린 모자> <배꼽> 등
●비평집 <동화책을 먹는 치과의사> 등
●(현)아동청소년문학 전문 출판사‘푸른책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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