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목화솜을 두어 조끼를 만들고 있습니다. 흰 솜 같은 눈이 오시나 가끔 밖을 내다봅니다. 시끄럽고 어지러워 마음 졸인 연말이었잖아요. 한 번쯤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변하면 모두에게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얀 눈이 내려준다면 목화솜 두어 짓는 옷에 눈꽃이 도톰하게 돋을새김이 되겠지요.
바느질을 하며 나윤선의 재즈 아리랑을 듣습니다. 볼륨을 살짝 높여봅니다. 강원도 아리랑이 구성지게 아리아리 쓰리쓰리 넘어갑니다. 프랑스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서 관객들을 울린, 하늘이 내려 준 신비한 목소리입니다. 새날에 들으니 괜히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낮이 길어지는 건 태양의 부활과 함께 생명력이 솟는 것
새알심 가득한 동지팥죽 먹은 힘으로 만드는 낙낙한 조끼
‘동지헌말’이 되어 누군가의 시린 어깨 따뜻이 감싸 주길
지난해 겨울, 서울의 종로 근처에서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기에 길 건너 조계사로 갔습니다. 동지가 사흘이나 지난 뒤였지요. 이곳저곳을 기웃대다가 공양주 보살을 만났습니다. 동지에 맞춰 오고 싶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늦게 왔다고 했더니 보살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내년에 꼭 오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내게 무언가를 건넸습니다. ‘동지헌말’이라고 쓰인 봉투였습니다. 그건 양말이었습니다. 동지를 맞아 조계사에서는 어르신들에게 주지 원명스님이 직접 새 버선을 신겨 드린 ‘동지헌말(冬至獻襪)’행사가 있었지요. 새 버선을 신고 이날부터 길어지는 해 그림자를 밟고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 하여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입니다. 신도들에게도 이천여 켤레의 양말을 나누어 주었답니다. 한사코 거절하자 팥죽 대신이라고 했습니다. 뜨끈한 팥죽 한 그릇을 먹은 것처럼 속이 든든했답니다.
이번 동지에는 조계사가 아니라 우리 동네 선암사에서 팥죽을 먹고 나도 동지헌말을 준비했지요. 예전에는 동짓달과 섣달 추위가 훨씬 매서웠습니다. 지금처럼 두툼한 오리털 점퍼도 없고 방한용품도 귀한 시절이라 겨울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동지헌말(冬至獻襪)’이라는 풍속이 생겨났나봅니다. ‘동지에 만들어 바치는 버선’이라는 뜻입니다. 며느리가 솜을 두둑하게 넣어 만든 버선은 시댁 어른들에게 더없이 훈훈한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버선을 지어 바칠 어른들은 떠나고 없어, 가족과 이웃을 위해서 양말을 준비했지요. 새 양말을 신고 걸어갈 한 해가 무탈하기를 마음모아 빌었습니다.
털신도 한 켤레 준비했습니다. 도법스님을 염두에 두었지요. 얼마 전 조계사가 한바탕 수난을 겪었잖아요. 스님들과 신도들 그리고 경찰의 대치가 불안했습니다. 부처님 계신 고즈넉하던 집이 얼룩덜룩 상처가 났습니다. 오랜만에 도법스님을 화면을 통해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추워보였는지요. 화쟁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은 스님이 정부와 민주노총 사이에서 얼마나 힘에 겨웠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그 분의 얼굴에서 고뇌의 흔적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답니다. 형형하게 빛나던 눈빛이 아니었습니다. 스님에게도 위로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조계사에 전화를 했더니 사무실 직원이 그러더군요. 언제 오실지 모른다고. 하긴 거처가 따로 있을 리가 없지요. 다 잊고 지리산 어디쯤을 걷고 계실지 모를 일입니다. 택배로 보내려던 털신은 포장된 채 그대로 있습니다. 눈발 날리는 날, 지리산의 천왕봉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실상사로 털신을 안고 찾아가려고 합니다. 십여 년 전 실상사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 스님은 맑은 차를 따라주며 ‘어울려 사는 곳이 곧 극락’이라고 했지요. 그렇게 어울려 사는 맛을 이웃과 동지팥죽을 나눠 먹으며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사람과의 어우러짐을 중요하게 여겼지요. 대문 열린 우리 집은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간구한 살림에도 정월 한 달, 집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떡국을 끓여 냈습니다. 노랗고 하얀 계란지단, 양념된 촉촉한 닭고기 꾸미와 함께 동치미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팥죽을 끓일 때도 떡국 떡을 썰 때도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습니다. 도라지 타령이었다가 태평가가 되기도 했지요. 나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떡국이 아니라 흰 가래떡을 먹습니다. 씹을수록 쫀득한 맛이 그만입니다.
새알심을 많이 먹으면 갑자기 호호 할머니가 될까 염려가 되어 몰래 그것을 건져 내던 어린 날들이 생각납니다. 새알심을 먹지 않아도 등 굽은 할머니가 되어 천과 천 사이에 목화솜을 두고 누비질을 합니다. 나윤선의 강원도 아리랑이 재즈풍의 정선아리랑으로 바뀌었네요. 몸 어느 곳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은 그의 창법은 편안합니다. 우아한 굿거리장단이 살아있습니다. 나도 힘을 빼고 세요각시(바늘)와 함께 바람인 듯 아닌 듯 느리게 천 위를 거닐고 있습니다. 길어진 해 그림자를 밟는 기분입니다.
낮이 길어진다는 것은 태양의 부활과 함께 생명력이 솟아나는 것이지요. 팥죽 먹은 힘으로 지금 낙낙한 조끼를 만듭니다. 이 옷도 ‘동지헌말’이 되어 숭숭 바람이 드는, 누군가의 시린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 주리라 믿습니다.
■ 배혜숙씨는
·수필가
·한국문협 회원
·국제펜한국본부회원
·수필집 <양파 썰기>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