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두차례 살인 저지른 피의자
파출소서 자수 불구 신고접수도 안돼
정년 앞둔 울주署 경찰 노력으로 해결

▲ 박철종 사회문화팀 부장

‘내가 살인범이다’라는 제목의 액션스릴러 영화가 2012년 개봉된 적이 있다. 연쇄살인범 ‘이두석’(박시후 분)과 형사 ‘최형구’(정재영 분)를 내세운 정병길 감독의 작품이다.

이두석은 살인 참회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스타덤에 오른 인물로, 최형구는 미해결 실종사건을 파헤쳐 그를 어떻게든 잡아넣으려는 형사로 각각 등장한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희대의 연쇄살인범’, 그리고 ‘그가 자신의 살인행각을 낱낱이 기록한 자서전을 출간해 전국을 발칵 뒤집는다’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다. 공소시효가 끝난 후 법적으로 무죄가 된 연쇄살인범이 경찰도 알지 못했던 완전범죄를 스스로 깨고 충격고백을 한다는 설정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울산에서 ‘내가 살인범이다’라고 주장한 A(44)씨가 6일 밤 구속됐다. 두 사람이나 잇따라 죽인 혐의를 받고 있다. 첫 번째는 2012년 2월13일 자신의 월세방 옆집에 살던 할머니(당시 75세)를 흉기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다. 경찰이 조사한 살해 동기는 두통 등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중 막연히 “할머니를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할머니와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 두 번째는 2012년 6월18~19일 주거지 앞 강가 무허가 판잣집에 홀로 살던 할아버지(당시 71세)를 같은 방법으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다. 범행 동기는 “평소 울주군수, 시장 등이 되기 위해서는 큰 일을 저질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번째 사건은 경찰이 낚시꾼, 원한관계 등 주변인물 조사, CCTV 확인, 현장감식 등 다각도의 수사를 했지만 약 3년간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었다. 사건현장의 단서·목격자 확보 실패와 CCTV 자료에서 특이한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치료중 숨진 첫 번째 피해자는 사건 직후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의료보험 적용을 못 받을까 우려한 가족이 신고를 미뤄 사건접수 기록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A씨가 이후 관할 파출소까지 찾아가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는데도 신고접수조차 안된 사실을 이야기 했지만 신빙성을 의심해 되돌려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다행히 이 두 사건의 해결에는 한 경찰관의 ‘촉’과 집요한 추적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년퇴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울주경찰서 형사과 박모 경위는 A씨가 살인범이라고 자백한 대목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사체유기 및 살해 방법, 외딴 범행장소 등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사항을 구체적으로 진술하자 혐의점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사건 피해자가 약 18년전 울산 성남동에 발생한 서점주인 살해사건 피의자의 아버지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당시 서점주인 살해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난 뒤 범인이 자수하는 바람에 처벌을 면했다. 이번 수사를 맡았던 박 경위는 짜맞추기라도 한듯 서점주인 사건과 판잣집 할아버지 사건을 마무리해 부자 살인사건을 해결한 주역이 됐다.

한편 A씨는 여러 신문이 주관하는 ‘신춘문예’에 오랫동안 응모해 온 문학 지망생이었다. 필자가 문화생활부 데스크를 맡았을 수년 전 자신이 신춘문예에 당선되지 못한 점을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내오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의 전국일간지 문화부 담당자에게도 비슷한 내용의 항의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이번 사건 피의자 A씨의 지능이 전 국민의 상위 1%내에 들기 때문에 입원하지 않고도 현실에 적응할 수 있다는 감정결과를 내놨다. 마치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스토리로 다가온다.

박철종 사회문화팀 부장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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