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연맹본부 연설…“시리아 정전, 평화적 대화해야
팔레스타인 국가수립 지지”패권주의 의심에 맹자 ‘대장부론’
“서방 권력공백 메울 의도 없어”

중동 핵심 3개국을 순방 중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의 역할을 ‘평화와 발전의 조력자’로 설정했다.

시리아 내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등 중동의 민감한 외교 현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이 지역의 공업화 발전을 위해 550억 달러(65조 9천45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같은 선언은 중국이 아시아를 넘어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핵심 지역인 중동으로 경제·외교안보 보폭을 넓히는 ‘중국판 중동 개입전략’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21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아랍연맹 본부에서 ‘중국과 아랍의 아름다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팔레스타인 분쟁, 시리아 사태 등 아랍권 분쟁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평화, 발전을 촉구했다.

시 주석은 연설 서두에서 “중동은 풍요로운 땅이다. (그러나) 이곳이 여전히 전쟁과 충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며 “중동은 과연 어디로 가는가? 이것은 세계가 누차 던지는 ’중동에 대한 질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랍연맹은 아랍국가 단결의 상징이다. 팔레스타인 인민의 합법적인 민족 권익을 수호하는 것은 아랍연맹의 신성한 사명이자 국제사회의 공동의 책임”이라며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지지했다.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서도, 지금 같은 전쟁으로는 아무도 승자가 될 수 없으며 내전 중단과 정치적 대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력이나 ’제로섬‘ 사고방식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시 주석은 말 뿐 아니라 중동 평화를 위한 ‘선물 보따리’도 풀어놓았다.

그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삶 개선을 돕는 데 5천만 위안(약 91억원)을 약속했으며, 시리아·요르단·레바논·리비아·예멘에는 모두 2억3천만 위안(약 420억원)의 인도적 지원 계획을 밝혔다.

지역 발전을 강조한 만큼 산업화를 위한 각종 차관 제공, 투자기금 조성, 교환 프로그램을 통한 인력양성 등 재정 지원도 약속했다.

특히 “중동공업화를 촉진하겠다”며 550억 달러(65조 9천45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150억 달러의 ‘중동 공업화 전문 대출(기구)’을 설립해 지역국가들과의 생산협력, 기초시설 건설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이와 별도로 100억 달러의 상업성 차관과 100억 달러의 우대성 대출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아랍에미리트·카타르와 함께 200억 달러의 투자기금을 설립해 중동의 에너지, 기초시설건설, 첨단제조업 등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은 ‘난제’를 돌파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이 지역의 발전을 가속하는 것이라며 중국은 중동과 함께 ‘일대일로’를 건설하며 “중동평화의 건설자, 중동발전의 추진자, 중동 공업화의 조력자, 중동안정의 지지자, 중동민심을 융합시키는 협력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베이징에서는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전화 통화로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한 협력을 논의하면서 시 주석의 외교 활동을 안에서 지원했다.

리 총리는 메르켈 총리에게 중국이 시리아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인도적 지원을 위해 노력 중이라며, 국제사회가 긴밀히 협력해 정치적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중국과 이집트 외무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유엔이 중재하는 평화 회담에 조속히 합류하라고 시리아 정부와 반군에 촉구하는 문건에 서명했다.

카이로에서 시 주석은 최근 전 세계를 뒤흔드는 테러의 궁극적 해결책은 중동 지역의 산업화와 발전이라는 견해도 내놓았다.

그는 젊은이들이 존엄성 있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희망이 생겨난다면서 그래야만 이 지역의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폭력과 극단주의 사상, 테러리즘을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시 주석은 최근 이란과 단교로 시선이 쏠린 사우디아라비아를 먼저 방문해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으며, 예멘의 국가적 통합을 지지하면서 예멘 내 분열과 혼란에 반대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도 시리아 문제를 조속히 평화적인 방식과 정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고 시리아 난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동 핵심 3국에서 그의 이런 행보를 두고 중국이 중동의 새로운 중재자 역할을 맡아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시리아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우디와 이란 갈등으로 중동지역 혼란이 극심해진 와중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면서 ‘권력 공백’이 생긴 것으로 지적됐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이를 의식한 듯 ‘입천하지정립 행천하지대도(立天下之正立 行天下之大道·천하의 올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큰 길을 간다)’는 맹자의 ‘대장부론’을 인용하며 중국의 중동정책은 ‘시비곡직(是非曲直)’과 ‘중동인민의 근본이익’을 따지는 데서 출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중동의 대리인을 찾는 대신에 평화 협상을 독려하며, 영향권을 찾는 대신 모두가 ’일대일로 계획‘ 안으로 들어올 것을 촉구한다”며 “우리는 공백을 메우려 시도하는 대신 ’윈윈‘을 위한 협력망을 구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대리인’, ‘세력권’ 등의 언급은 에너지 안보, 테러와의 전쟁 등을 이유로 중동지역 갈등과 분쟁 등에 수십년 간 직접적으로 개입해온 미국의 중동개입 전략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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