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사(長春寺)의 봄은 이름처럼 길고 따사롭다. 사립문 밖의 언덕에 핀 괴불주머니의 노란 꽃들이 죽 늘어서 우리를 맞았다. 여느 절 집과 완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겨 첫 인상이 무척 좋다.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곳에 이렇듯 고요하고 정갈한 절 집이 있을 줄이야.  장춘사가 돋보인 것은 아무래도 일주문이다. "무릉산 장춘사"란 현판이 걸린 작은 문은 어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다. 고개를 악간 숙이고 들어가야하는 일주문 덕분에 자신을 들풀처럼 낮출 수 밖에 없다.  경남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의 장춘사는 마을에서 계곡을 따라 좁은 길을 1.5㎞정도오르면 나오는 아늑한 절 집이다. 숲길을 오르는 동안 줄곧 들리는 새 소리가 맑다. 비질이 잘 된 마당 한 쪽으로 "도르르" 소리가 나서 가 보았더니 돌 확에 떨어지는물 소리였다. 조롱박으로 떠서 마시는 물맛은 달고 시원하다.  신라 헌덕왕 7년에 무능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니 오래된 절이다. 경남 문화재 자료 16호인 대웅전은 79년에 개축한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으로 무릉산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오층석탑은 단아했다. 이중 기단 위에 5층의 탑신 부를 이루고 있었지만 현재는 4층만 남아있다. 그 양식이나 수법으로 보아 고려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 탑보다 마음을 끈 것은 탑 앞에 놓인 배례석이다. 수많은 배례석을 보았으나 그처럼 작고 어여쁜 배례석은 처음이다. 둘레에 새겨진 연꽃 문양은 섬세했다. 대웅전 앞마당에 한 송이 연꽃으로 피어났다.  무엇보다 장춘사가 우리 일행 모두를 감동시킨 것은 대웅전 뒤편 언덕 위의 약사전과 그 앞의 뜰에 핀 풀꽃들이었다. 약사전은 맞배지붕으로 정면1칸 측면 1칸의조그만 건물이다. 이 곳에 안치된 약사여래좌상은 경남유형문화재 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약사전과 어울리는 작은 불상이다. 결가부좌한 석조 약사여래좌상의 엷은 미소와 뚜렷한 이목구비가 박력있는 모습이었다. 광배에는 연꽃 무늬가 가지런히 새겨져 있고 화염문으로 둘러 싸여 보는 이로 하여금 두 손을 모으게 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이 돌 부처님을 개금하여 그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 부처님이 그윽이 내려다보는 뜰에는 봄꽃이 한창이었다. 2월말부터 피는 봄맞이꽃이 앙증스럽게 흰 꽃을 피우고 있다. 초록의 풀 사이로 개별꽃이 청초함을 드러내고 의연하다. 제비꽃과 노란양지꽃이 무리지어 피어 저희들끼리 몸을 비비고 하늘거린다. 각시붓꽃과 애기똥풀도 질세라 피어나고 머위는 언덕 한 쪽을 장식했다.꽃들로 인해 봄은 길기만 하다.  아마 장춘사는 1년내 번잡함은 없을 것 같다. 주지 법연 스님의 해탈한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것저것 궁금함을 묻고 싶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스님의맑은 얼굴을 대하는 순간 무엇인가 알려고 하는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게 했다. 그냥 말을 잃었다. "무념 무상"을 보았다.  법연 스님은 80년대 중반, 불교 잡지 〈해인〉지 편집장을 맡았던 분이다. 〈해인〉을 불교 잡지로서의 위상을 굳히게 했고, 한 단계 올려놓으셨다.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는 분이다. 한적한 시골 절을 혼자서 지키고 계신다. 절 집도주인을 닮아서인지 곳곳이 맑고 깨끗하다. 어디하나 허술하고 흐트러진 곳이 없다. 절 집 뒤편 창고에 정리 된 농기구들의 모습이 스님의 성품을 읽게 했다. 마당과 밖을 경계로 하는 사립문 곁에 서면 세상의 근심 다 잊고 스님처럼 맑고 평온해 진다.  스님의 오랜 벗인 현웅 스님은 법연 스님을 일러 "은하수 중 맑고 밝은 별 하나가무슨 사정이 있어 사바에 잠시 의탁하러 온 경우"라고 했다 한다. 그래서 한 발자국걸음을 옮길 때마다 속세의 먼지나 때가 떨어질까 봐 조바심이 났다.  마당에 서면 계곡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산들이 정겹다. 마치 깊은 산중에 와 있는 듯 하다. 산은 여린 녹색의 빛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다. 마당은 봄 햇살이 가득하다.무설전 마루에 앉아 햇빛 쏟아지는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한없이 평화롭다. 모두들 떠날 생각을 잊고 만다..  대웅전 앞 화단에는 키 큰 모란이 잔뜩 물을 올리고 서 있다. 모란이 피는 5월이 오면 그 향기가 절 집을 가득 메운 다고 스님이 넌지시 일러주신다. 모란이 활짝 피는 5월에 다시 오자고 우린 귓속말로 주고받는다.  경내 여기저기 석물 들이 잘 배치되어 있는데 모두 오래된 것들이다. 이끼가 곱고 세월의 때가 켜켜이 쌓여 있다. 건물마다 걸린 현판들이 예사롭지 않다. 장춘사는 그렇게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고, 속세의 욕심을 걷어내기에도 더 없이 청정한곳이었다. 작은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한없이 겸손해 지는 것만으로도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찾아가는 길  울산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언양을 거쳐 양산으로 가다가 대동과 김해를 거쳐 서마산을 지난다. 내서 분기점에서 구마고속도로로 방향을 바꾸어 칠원 IC를 빠져나간다. 1041번 지방도로에서 칠원면 사무소를 지나 칠북면 사무소 쪽으로 가는 중간 지점인 양촌 에서 오른쪽으로 장춘사 가는 팻말이 보인다.  주변 볼거리  함안군 칠북면의 무기연당도 가 볼 만한 곳이다. 일명 기양서원이라고 하는데 국담주재성, 감은재 주도복 부자의 유적지이다. 영조4년 이인좌 난을 평정하여 대공을 세운 국담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영조 37년에 세웠으며 1971년에 중건하였다. 경내에는 중요문화재 자료 제 208호로 지정된 하환정, 풍욕루, 감은재를비롯하여 국담 생가와 연못, 사당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222호인 함안군 칠원면 용산리의 새 발자국 화석도 가까이 있다. 이 화석은 매우 희귀한 것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연구 발표된 것이다.  마산, 함안, 창원경계에 낙랑 정맥의 한 마디를 장식하는 천주산도 멀지 않다. 천주산 입구 달천 계곡 초입에는 수백 그루의 벚나무가 봄이면 흰 비단길을 장식한다. 그리고 4월 중순이면 해마다 진달래 축제가 열린다. 주봉인 용지봉을 중심으로 온 산을 뒤덮는 진달래가 압권이다.  마금산 온천도 가까이 있으며 주변에는 토속 음식인 순두부집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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