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술자리의 건배 제의(위하여!)가 바뀌어 왔다. IMF때 부자들이 "이대로!"를 외치며 술잔을 들었다는 말처럼 건배 제의는 시대상을 비꼬며 국민들의 정서를 적나라하게 대변하기도 한다.  언제 누가 퍼트리는지 몰라도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지는 그 유행어는 그러나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담기기도 하는 그 유행어는 우리 국민들의 "네탓"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최첨단 현대문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식구조는 마치 왕정시대를 방불케 한다. 큰 사고가 나도 임금님 탓이요, 경제가 어려워도 임금님 탓이다. 살기가 어렵다고 왜 나라님 탓만 할까? 나라님 뽑은 사람이 누군데?  나라님은 하늘이 낸다는 말처럼 대통령은 국운과 맞물려 있고, 국운은 국민이 선택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개인운세가 그렇듯이 나라의 운세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을 것이다. 내리막을 잘 참고 견디면 오르막이 수월할 것이라는 믿음이 아쉽다.  그 나라의 정치수준은 국민수준과 비례한다. 정치권을 탓하기 전에, 나라님만 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자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발 남의 탓과 양비론은 그만 두자. "우리나라 사람들 아직 멀었어" 따위의 자조와 자학도 그만 두자.  한때 88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한국이 망할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사람들이 있더니, 언제부턴가 항간에는 2002년 월드컵 이후 청문회가 열릴 거라고 악담하는 사람들이 있다. 청문회에 불려나갈 인사들을 거명하는 걸 보면서 나는 기가 막혔다. 지식층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국운이 걸린 세계적인 축제를 앞두고 왜 뒤에서 비아냥거릴까? 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으면 저런 말이 나올까 싶으면서도 일부 지식인들의 왜곡된 생각이 몹시 불쾌했다. 무슨 일이건 잘되길 바라지 않고 왜 못되길 바라는 것일까? 상대적 소외감이 빚어낸 유언비어라고 하기엔 도가 지나쳤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인생은 긍정적으로 풀리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매사에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국민들의 앞날은 밝아질 수가 없다. 동해안에서 석유가 발굴돼 우리나라가 부자가 된다거나, 북한이 무조건 통일을 제의해서 남북이 한 덩어리가 될 거라는 등 긍정적인 유언비어가 많이 나돌았으면 좋겠다.  나는 475세대로서 배고픈 시절에 태어났고, 부모님과 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아왔다. 어떻게 이 식구들이 살아나갈까 싶어 막막했던 적도 있었는데,열심히 살다 보니 지금은 모두들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이 얼마나 고마운가!  어릴 때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는 엄청나게 잘 사는 편이다. 고도성장과 함께 누적된 거품이 빠지느라 수년째 고통을 겪고 있을 뿐이다. 참자, 조금만 참고 희망을갖자. 지금보다 못살던 때를 생각하며,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하며 어려움을 이겨내보자. 남의 탓만 말고, 나랏님 탓만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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