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일은 법의 날이다. 이번 법의 날은 석가탄신일과 겹쳐 있다. 부처님의 말씀을 왜불법이라 했는지는 모르나 같은 법(法)자를 써는 것을 보면 왠지 세상의 온갖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우리의 법도 부처님의 말씀에 닿아 있어야 한다는 것 같기도하다.  울산에서 민사사건을 담당하면서 법의 지배나 한국의 법률문화 등 거시적인 주제를생각해볼 기회는 좀처럼 없다. 그저 작은 사건들을 대하면서 간혹 왜 이럴까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알고보면 법정까지 찾아오는 문제들도 사소한 것이 실마리가 된다.  민사분쟁 가운데 상당수가 당사자들끼리 명확한 약정을 하지 않거나 그러한 약정을문서로 해놓지 않아서 생긴 문제들이다.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면 워낙 서로 믿는 사이라서 혹은 쓸데없는 오해를 할까봐서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분쟁은 바로 그런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사전에 미리 대비하는 노력은 분쟁이 발생한 후 겪는 고통에 비하면 별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형제간의 소송도 잦다. 형제간의 분쟁으로 법원으로 온 상태라 그들 사이의 증오는 남남들끼리 하는 소송에서보다 훨씬 더하다. 그런데 형제간의 분쟁은 대부분 원인이 부모가 남긴 재산 때문이다. 자식들을 위해 힘들게 모았다면 분배에 관해서도 전문가와 상담을 하는 등 모으는 것 이상으로 힘을 기울여야 할 세태가 된 듯 싶다.  이름을 빌리고 이름을 빌려주는 일은 또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남의 이름을 빌리는 사람이야 무슨 계산이 있어서 그렇겠지만, 이름을 빌려주는 사람은 그로 인해법적인 책음을 모두 떠안아야 한다는 것을 왜 미리 알지 못할까. 비슷한 경우로 가까운 사람들이 어디에 쓴다고 해서 믿고 도장이나 서류를 건네주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그들이 종종 그 도장이나 서류 때문에 나중에 전혀 엉뚱한 다른 곳에서 채무자로 둔갑되어 있다. 그런 사람들의 사정이야 딱한 줄 알지만, 그 도장이나 서류를 받고 이를 신뢰하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볼 때 그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가 매우 어렵다.  소송을 하는 사람들은 판사가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모르고 섣불리 결론을 내려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많이 한다. 서면으로 그토록 자기사건에 있어서의 특수하고 억울한 사정을 적어냈건만 판사는 도대체 그러한 사정을 알고나 있을까 불안해 한다. 그런 불안감 때문에 담당판사를 사적으로 만나서 말이라도 좀 했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솔직히 말하면 담당판사를 만나서 말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왕왕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서면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는 판사는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말해주고 싶다. 소송을 하는 사람들은 사건의 전후사정과 자신이 억울하게 생각하는 점 등을 자세히 적어내는 데만 충실하면 된다. 사실 판사는 일주일에 한번씩 돌아오는 재판을 위해 일주일 내내 그 서면을 검토한다. 굳이 판사를 만나서 직접 호소해보려고 기를 쓰지 않아도 충분하다. 정말로 충분하다.  특히 올해부터는 새로운 민사사건관리 방식이 도입되어 그러한 불안감이 더 많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판사들은 사건 하나마다 충분히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분량만큼만 재판하고 당사자들은 법정에서 판사에게 자신의 주장이 직접 전달되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새로운 민사사건관리 방식에서는 질질 끄는 재판의 불편함도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이제 당사자들은 각종 주장을 일단 글로 적어내고 증거서류를 다 제출한 후 법원에 가서 서로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한 다음 한번 더 법원에 가서 필요한 증인신문을 마치면 재판을 끝내게 된다. 증인이 여러명이더라도 한꺼번에 한자리에서 모두 신문한다. 원칙적으로 민사재판은 두번만 법원에 가면 끝나는 것이다.  만인에 대한 법의 엄정함, 제대로 된 법치야말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든다. 법원이나 재판 등의 생소함 때문에 주눅이 들어 할말을 다 못하고 돌아서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음을 밝혀두면서 법의 날을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위한 분발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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