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각보 - 배경희 作.

자투리 천을 이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조각보,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을 읽을 수 있는 조각보가 사라져가는 것이 아쉽다.

삼월 볕은 어딘지 어릿어릿한 표정이다. 음력 이월 영등할매 서슬로 꽃샘바람한텐 아예 주눅이 든다. 햇살이 매화수술 밑에 깔리고 벚꽃망울 위에 머뭇댄다. 더구나 “기-미년 삼-월 일일 저엉오-오--” 태극기 물결 속에 비장하고 장엄하게 첫날을 시작하는 삼월에 나대지 말자고 스스로 삼가는 태도다.

삼월 달은 봄이라고, 봄옷을 입고 나서면 잊지도 않고 꽃샘추위가 스며든다. 오슬오슬 돋은 삼월 한속을 보자기가 지워준다. 예쁜 무늬 보자기를 삼각형으로 접어 목에 두르면 등까지 따뜻해진다. 보자기 한 장의 위력이다.

생의 처음과 끝 함께 하는 보자기
세련되고 비싼 가방들 판치지만
보자기의 사용처는 아직 무궁무진
외진 곳 묵묵히 걷는 무소유의 표상

우리 생의 시작과 마감도 보자기로 한다. 갓 태어나서 배냇저고리 한 장 걸치고 달랑 기저귀만 차고도 강보에 싸이면 아늑함을 느끼며 첫 생을 내디딘다. 새 인생으로 나아갈 때도 보자기가 거든다. 사주단자는 정성껏 채색보자기에 싸서 함에 넣고, 함을 또 소중하게 채색보자기로 싸맨다. 명줄을 놓아버린 생의 마지막 신체도 엄숙하게 삼베보자기로 마무리 한다.

옛 여인들은 출가할 때 자리보, 혼수보, 쓸보 등 백여 장이 넘는 보자기를 가져갔다. 보자기 용처도 많았겠지만 소복소복 복을 싸서 가는 의미도 진했으리라. 여인들은 밥상보, 횃댓보 등 보자기의 매력에 빠져 쓸 용도가 아닌 보자기에도 아름답게 수를 놓아 간직했다. 꽃과 나비, 십장생, 어여쁜 자연을 수놓으며 향기로운 여인에 이르고자 했음이다.

남편이 퇴직하고 사무실에서 사용하던 손때 묻은 소지품을 담아온 것도 보자기였다. 회사가 굳이 엄청 큰 보자기를 선물한 것은 복을 많이 싸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길 기원하는 의미였던 것 같다. 밤색과 하늘색이 교차된 보자기엔 남편 책상 위에서 짧지 않은 세월 동안의 직위를 지켜온 명패도 있고 임명장이며 도장 등이 담겨 있었다. 남편의 청춘 시절과 중장년의 인생을 오롯이 다 바친 흔적이 보자기에서 끌러져 나왔다. 알토란같은 알찬 밤톨들이 더미를 이루던 밤색 시절과 황혼을 앞두고 이젠 좀 느긋하게 살아갈 하늘빛 시간을 그 보자기가 다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의 빠른 승진과 실팍한 직위를 나의 배경으로 자만했던 순간도 있었을 듯싶다. 그토록 아등바등하는 인생도 단 한 보따리로 정리되지 않느냐고 보자기가 넌지시 이르는 듯 했다.

학생 시절 삼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어머니는 새 책을 잘 담아오라고 푸른빛 보자기 한 장을 접어 책가방에 넣어 주셨다. 지금도 나의 외출가방 속엔 부피감이 적어 편리한 보자기 두 장이 접힌 채 비상시의 정예요원처럼 자리하고 있다. 냉방 강한 고속버스 같은 데서 보자기를 꺼내 한 장은 어깨에 두르고 한 장은 무릎을 감싸면 간단히 냉기를 물릴 수 있다. 세련되고 비싼 백과 쇼핑백이 보자기 대신 판을 치는 이 시대에도 보자기의 사용처는 면면하다.

지난 달 설에 아들이 명절을 쇠러 오면서 황금색보자기에 싼 곶감상자를 들고 왔다. 곶감보따리를 들고 들어서는 아들을 보면서 딸 내외와 우리 부부는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오-우!, 소리를 질렀다. “형님, 천리타향에서 부모님 계시는 고향집 찾아오시는 포스인데요.” 사위의 오우! 에 대한 풀이말에 우리 모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들의 거처는 5분 거리의 지척 간에 있는 터였다. 젊은 세대인 아들도 씩 웃고 딸 내외도 오우, 한 것은, 명절에 고향 가는 자식들이 넉넉지 못한 지갑으로도 열심히 마련한 선물보따리를 양손에 잔뜩 들고 부모님을 뵈러 가던 보자기의 정서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가 애면글면 보따리 보따리 싸서 이고 들고 자식 집을 찾아가던 것도.

보자기를 접다가 손바닥만 해지면 참 허허해 보인다. 그저 얇은 정사각형일 뿐이다. 무엇 하나도 제 것으로 가지려 해본 적 없는 무심의 형상 같다. 가리고 싶은 데는 덮이고, 옮기고, 보관하고, 지켜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인 모습이다. 제 할 일 다 한 뒤엔 조그맣게 접혀 잊히듯 서랍귀퉁이로 떠밀려 들어간다. 외진 데서 묵묵히 홀로 걷는 무소유의 표상이 저럴까 싶다.

활짝 펼치면 그야말로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사각모서리가 물건을 싸맬 땐 불불이 일으켜져 선물 포장의 리본도 되고 이동수단의 튼튼한 매듭도 된다. 허허실실의 정형이다. 등 굽은 할머니가 들고 온 채소보따리로 길바닥에 펼쳐져 난전의 흙 묻은 가판대가 되다가도 매혹적인 조각보, 수보가 되어 벽을 장식하는 예술품으로 변신하는 보자기는 전생이 멋있는 낭만방랑자였던가. 손끝에 잡고 고층 창에 내밀어 먼지를 털다 잠시 손가락 하나 힘을 놓으면 서슴없이 훨훨 날아가 버릴 자유로운 영혼 같다. 보자기는.

 

■ 최영주씨는
·1999년 월간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울산문인협회 회원
·울산수필가협회 회원
·울산수필 회원

 

 

 

 

■ 배경희씨는
·효성여대 회화과 졸업
·한국미술협회 회원
·울산미술협회 회원
·환경미술협회 회원
·울산여류작가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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