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끔찍한 뉴스 쏟아지는 대한민국
복잡·난해한 문제 풀 책임은 정치권에
그런 인재 골라낼 의무는 유권자의 몫

▲ 박영철 울산시의회 의장

무섭고 두렵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인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연일 쏟아지는 끔찍한 뉴스가 핏줄과 근육, 뼈마디를 욱신거리게 한다.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고, 자식은 또 부모를 학대한다. 학대를 넘어 무참히 죽이고 시신마저 유기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무척 아프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답은 보이지 않고, 끝이 없는 터널 속에 갇혀있다는 느낌이다.

끝없는 격차사회 속에서 개인은 나약한 존재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많은 생명이 홀연히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다. OECD가입 국가 가운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살률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세계인들에게 각인된 대한민국의 또다른 이름은 자살공화국이다. 최근 조사결과 인구 10만명당 27.3명이 자살로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꿈이 없고, 희망이 없는 사회에 내던져진 인간의 비루한 단면이 오늘의 현실이다.

또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할 자리가 없고, 취업을 해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 대상이 어느 순간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우리 사회를 더욱 어둡고 슬프게 만들고 있다.

무섭고 두렵고 어둡고 슬픈 일상은 사회 전 분야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렇게 짓눌린 공포가 극단의 삶으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 모두가 한번쯤 깊이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가진 것을 움켜쥐면서 또다른 것을 빼앗으려는 그릇된 탐욕도 한몫하고 있다. 소위 갑을관계에서 빚어지는 각종 문제들이 대표적이다. 주종관계를 강요하는 갑질은 공정경쟁이라는 건강한 생태계를 훼손하고 있다. 을의 위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제발 공정하고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달라고.

격차사회와 짓눌린 공포는 사각지대라는 독버섯을 양산하는 음습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사회의 안전망과 복지망은 허술할 수밖에 없다. 100m 달리기를 하면서 누군가 10m 앞에서 출발한다면 승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최소한 동등한 조건과 여건에서 겨룰 수 있도록 해야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결국은 그런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를 풀어나갈 가장 큰 역할과 책임이 정치권에 있다. 갈수록 커지는 격차사회를 해소하고, 불안에 휩쓸린 짓눌린 공포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 안전망과 복지망을 더욱 촘촘하게 짜는데 누가 적격인지를 가려내야 할 의무와 권리는 유권자들의 몫이다. 민생은 제쳐놓고 당리당략에 매몰돼 이전투구하는 잘못된 정치에는 매서운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그런 옥석을 가리는 작업은 선거를 선의의 정책경쟁이 아닌 비방과 조롱 등으로 흙탕물을 일으키는 최악의 후보를 골라내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오로지 당선만을 목적으로 경쟁상대에 대해 ‘아니면 말고’ 식의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을 일삼는 것은 정치불신을 가중시킨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로 꿈과 희망을 잃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바르지 못한 것으로 인해 민심마저 사분오열되면 울산은 물론 대한민국은 좌초의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무섭고 두려운 사회는 우리 스스로 기본과 원칙을 지키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 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친 구석이나 극단의 모서리는 잘 보이지도 않고, 제대로 굴러갈 수도 없다. 모나지 않은 둥근 원처럼 둥글둥글한 정신으로 난마처럼 얽힌 문제들을 풀어나갈 때 윈윈도 하고, 상생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영철 울산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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