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장기화로 세계경제 불황 확산
저금리·양적완화정책 지속적으로 펼쳐
부동산 폭락·금융시스템 붕괴 주의를

▲ 박호근 언론인·전 연합인포맥스 사장

올 들어 세계경제가 급격한 불황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불황국면은 몇 년 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올 들어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어 심각하다. 경기불황의 원인을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는 없으나 그 중심에 국제 원유가격의 폭락이 자리 잡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두바이유 기준 원유가격은 2012년 3월30일 배럴당 124.22달러였던 것이 올 들어 1월21일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22.83달러까지 떨어졌다가, 3월1일 배럴당 30달러선을 회복, 유지하고 있다. 올해 중 최소한 50달러선을 회복한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저유가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원유뿐 아니라 구리 납 아연을 비롯한 원자재의 국제시세도 최근 들어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크게 떨어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같은 저유가 추세는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경제의 성장세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저유가 추세의 장기화로 남미, 중동, 러시아 등 주요 석유수출국들의 소비와 투자에 발목을 잡고, 이는 다시 세계경제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무시할 수 없다.

경기침체의 타개책으로 주요 선진국들은 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을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다. 가장 먼저 20년 이상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일본은 제로금리에 이어 올해 초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했다. 미국은 최근들어 금리 인상을 조심스럽게 검토하는 분위기를 보이지만 최근 수년간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해 왔다. 유럽 19개국이 가입돼 있는 유럽중앙은행(ECB)도 지난 10일 제로 금리의 도입과 유동성 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선언했다.

선진국들은 시중 유동성 공급확대로 내부적으로는 소비확대와 투자활성화를 촉진하고 대외적으로는 자국 화폐의 가치를 평가절하시켜 수출을 확대하는 효과를 기대한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양적완화는 선진국들이 철저히 경계해온 정책이었다. 돈을 많이 풀 경우 돈의 가치가 떨어져 물가가 오르고 결국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경제파탄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특히 70, 80년대 중남미 지역을 휩쓴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같은 당시 경제강국들이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한국은행도 마찬가지지만 각국 중앙은행들은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금리인하와 유동성 공급확대로 우선 경기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정부에 맞서 끝없는 견제 역할을 담당해 온 역사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각국 중앙은행들조차 전통적인 물가안정 유지 입장에 변화가 일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어느 정도 조장해 경제가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휩싸여 있는 게 오늘날 세계경제의 현실이다.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면서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이 오히려 걱정인 시대가 된 것이다.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가치의 버블이 걷히면서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경제파탄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경험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7년 이른바 국제통화기금(IMF)사태나 90년부터 시작된 일본경제의 장기침체, 그리고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 등의 공통된 현상은 부동산 가격의 폭락으로 인한 금융시스템의 붕괴이다. 1200조원을 넘어선 우리나라의 엄청난 가계부채 규모와 저유가의 장기화를 생각하면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의 확산이 얼마나 심각한 현상인지,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은 크다.

박호근 언론인·전 연합인포맥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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