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들에겐 공해도시 이미지 여전
생태도시 변신 알릴 새 스토리 필요해
예술·낭만 어우러진 태화강 만들어야

▲ 정명숙 논설실장

25년 전쯤이었던가. 조병화 시인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울산에 대한 인상을 물었더니 “공기가 좋다”고 말했다. 난감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의 말이긴 했지만 그대로 기사로 옮길 수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태화강에선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울산=공해도시’를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현대중공업의 초청을 받아 강의 차 왔던 그는 비행기를 타고 울산에 도착, 현대호텔에서 숙박을 하고 점심으로 주전바닷가에서 생선회를 먹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10여년이 흐른 뒤, ‘에코폴리스 울산’ 선언과 함께 태화강 되살리기가 시작됐다. 불과 몇 년 만에 수영대회가 가능할 만큼 태화강은 깨끗해졌다. 돈만 벌면 떠나야 할 도시에서 살고 싶은 도시로 바뀌었다. 울산을 찾아온 외지인들의 찬사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다. “강물에 대숲까지… 태화강은 보배다.” “도심 한가운데 강이 흐르는 이런 도시가 어디 있겠느냐.” “차를 타고 10분만 나가면 아름다운 바다와 산이 있는 천혜의 땅이다.” 조병화 시인의 난감했던 말은 어느새 현실이 됐다.

다시 10년이 흘렀다. 여전히 울산으로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지인들이 공해도시에서 어떻게 살겠냐고 걱정하던데, 와서 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라면서 감탄사를 늘어놓는다. 방점을 앞 문장에 찍어보자. 울산에 온지 28년째인 필자가 울산으로 올 때 들었던 걱정을, 최근에 발령받은 공직자와 공·대기업 임원들도 똑같이 듣고 있다. 울산에 대한 인식은 공해에 찌들었던 25년 전이나, 태화강에서 수영대회가 열린 10년 전이나, 재첩과 굴이 서식하는 지금이나 그다지 다르지 않은 셈이다. “울산은 역시 듣던 대로 아름다운 도시군요”라는 말은 언제쯤 듣게 될까.

홍보를 적게 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 공무원들이 중앙부처를 찾아다니며 ‘생태도시 울산’을 알리는 유인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이유가 뭘까. 스티브잡스는 픽사의 애니메이션 감독 존래스터의 말을 빌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나쁜 스토리가 좋은 스토리로 바뀌지는 않는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태화강 되살리기는 ‘좋은 기술’이었을 뿐 ‘좋은 스토리’는 없었다. 스티브 잡스가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비범한 사람들의 집합’이라고 했던 픽사는 ‘좋은 스토리에 전념하는 문화가 깊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태화강은 여전히 우리에게 매우 큰 자산이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아직은 ‘2% 부족’하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온 UNIST의 한 교수는 “젊은 전문가들이 울산에서 살고 싶게 하려면 보스턴의 찰스강처럼 태화강에 젊음이 넘치도록 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나쁜 스토리를 덜 나쁜 스토리로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살기 좋은 울산의 상징이 되기에 충분한 좋은 스토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태화강 되살리기’가 너무 큰 성공을 거두는 바람에 ‘차기 제품’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비즈니스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존재하는 ‘차기 제품 신드롬(second-product syndrome)’을 겪을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는 “첫번째 제품에서 굉장히 성공을 거둔 회사들이 차기 제품을 시장에 내놓지 못하거나 시장의 반향을 일으키는데 실패하는 이유는 첫번째 제품이 왜 성공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태화강 되살리기’는 왜 성공했을까. 한마디로 답하면 깨끗한 환경에 대한 시대적 요청과 시민적 공감대가 시너지효과를 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전 시민이 공감할 수 있는 시대적 요청은 무엇일까. 필자는 예술·젊음·낭만이라는 좋은 스토리를 담아내는 ‘태화강 르네상스’라 생각한다. 아름다운 미술작품전이 펼쳐지고, 음악가들이 노래하고, 젊은이들이 수상레포츠를 즐기며, 아름다운 건축물과 다리가 늘어서 있는 태화강. ‘태화강 르네상스’가 태화강 시리즈의 차기 제품으로 성공을 거둘 때 비로소 울산으로 발령받은 누군가는 “아름다운 울산에 살고 싶은 오랜 꿈이 드디어 실현됐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을까. 정명숙 논설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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