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승4패 압도적 열세 보였지만
알파고의 진격 혈혈단신 맞서
인간 한계 도전한 모습에 열광

▲ 황정욱 연합뉴스 정치담당 에디터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간 ‘세기의 대국’은 허망했다. 큰 관심을 끌었던 인공지능(AI)과 인간의 대결이 AI의 완승으로 막을 내린 데 대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세돌이 바둑 천재인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전성기가 살짝 지나가긴 했어도 지난 10년간 세계 최강으로 군림해왔다. 그런 이세돌이 1승4패의 압도적 열세를 보인 것은 의외였다. 알파고 바둑에 대한 정확한 사전 정보가 없었던 것이 알파고 경시의 원인이 됐을 것이다. 막상 뚜껑을 여니 알파고의 기력은 인간의 최대치를 뛰어넘는 괴력 그 자체였다.

세계 바둑 랭킹 1위인 중국의 커제(柯潔)가 나섰으면 어땠을까? 알파고의 수준에 비춰 5전 전패를 면하면 다행일 듯 싶다. 한 때 바둑계를 호령했던 서봉수가 자신감이 충만했던 전성기 시절 “신(神)과 둬도 2점 접바둑이면 이길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적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서봉수의 치기일 뿐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알파고의 기력이 어지간한 프로기사와 정선으로 붙어도 쉽게 지지 않을 정도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외람된 얘기지만, 2점 접바둑도 꼭 이긴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세돌은 패했지만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필사적인 모습에 관전자들은 열광했다. 뜨거웠던 ‘이세돌 신드롬’의 실체는 뭘까? 냉정하게 보면 이번 대국도 승패가 본질이다. 승리와 패배를 안고 사는 것은 프로 기사의 숙명이다. 승리가 많으면 강자가 되고 패배가 많으면 약자가 된다. 이세돌이 알파고의 맞상대로 선택된 것도 그동안 쌓아온 수많은 승수 때문이다.

당연히 이세돌은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알파고와의 대국 우승상금 12억원은 이기면 받는 대가이고, 이 또한 프로세계에선 의미가 있다. 프로바둑에서 승부에 지고도 하이라이트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면에서 이세돌은 특이한 케이스다.

바둑은 흔히 인생에 비유된다. 19로(路)의 복잡한 미로는 삶 앞에 놓인 수많은 갈림길과 유사한 데다 음양의 조화로움도 녹아 있다. 흑돌과 백돌이 짜나가는 한 판은 인생행로와 흡사하다. 그래서 예전에는 바둑을 잘 두려면 인생의 달고 쓴 맛을 알만한 나이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런 암묵적인 공감대를 깬 것은 이창호의 등장이었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기라성같은 고수인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등을 무너뜨리고 1인 독주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창호는 우리 바둑사(史)에 ‘반집’의 의미를 처음 도입한 기사다. 반집은 운(運)이라는 개념을 뛰어넘어 승부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만큼 계산에 빈틈이 없고 치밀했다. 이창호의 별명이 신산(神算)인 것도 이 때문이다. 예술적, 풍류적 바둑에서 계산적, 기계적 바둑으로 전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알파고는 또 다른 충격이다. 이를테면 국내 프로축구 리그에 로보캅이 등장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누가 로보캅의 무지막지한 힘과 프로그래밍돼 있는 정확성, 강력한 골세례에 맞설 수 있겠는가. ‘이세돌 신드롬’은 알파고의 거침없는 진격에 혈혈단신으로 맞서다 속절없이 허물어진 약자의 비애에 대한 감정의 동일시 현상이 아닐까?

어느덧 봄이 왔다. 봄볕에 앉아 봄을 만끽하며, 그 누구와 어울려 오묘한 바둑 수에 빠져보는 것도 낭만스럽겠다. 아마추어에게 승패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 알파고가 봄의 정취를 알기나 하겠는가.

황정욱 연합뉴스 정치담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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