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 충분한 변론이 어려운 현실
변호인의 구두변론권 보장 방안 강구
겸손·배려·경청의 마음가짐이 절실

▲ 손영재 법무법인 늘푸른 대표변호사

2013년 4월10일, 지금은 변호사 개업을 한 변찬우 검사장은 제 18대 울산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일성으로 ‘겸손·배려·경청’하는 자세를 통해 ‘착한 검찰’이 되겠다고 했다. 2014년 12월5일, 울산지방검찰청 신청사 준공식에서 봉욱 검사장은 “시민이 원하고 체감하는 법치확립을 위해 겸손·배려·경청하는 검찰이 되겠다”고 했다. 검찰의 자세는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국민이 요구하는 덕목을 구체화시킨 것으로, 바람직하게 변화된 검찰의 모습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국민의 요구는 검찰 뿐만 아니라 경찰과 법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겸손·배려·경청의 정도가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 등 성직자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경청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선입견이나 편협한 주관을 벗어나 열린 자세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고, 사건 관계자의 인권이 존중되는 정도를 요구하는 것이다. 사실 업무량이 많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건을 다루는데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경찰관이나 판검사의 입장에서 사건 관계자에 대한 ‘겸손·배려·경청’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 필자는 여자 대학원생이 지도교수로부터 추행을 당한 사건에서 피해 여성을 대리하는 일을 맡았다. 하루는 그 여성이 담당 경찰관으로부터 현장검증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동행해 달라고 했다. 과거 필자가 현직 검사로 있던 시절이 떠올라 현장검증 당일 미리 가서 담당 경찰관에게 우려를 전했다. 그 때만 해도 경찰관이 강간 사건의 현장검증을 하면서 피해 여성으로 하여금 가해자 또는 대역과 함께 범행을 당하는 포즈를 취하게 했다. 피해자는 범행의 악몽이 되살아나 이중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많이 변했다. 요사이는 피해 여성이 편안하게 현장검증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여자 경찰이 함께 왔다. 그 여경은 현장검증 내내 피해여성과 동행하며 불편이 없도록 했다. 수사기관의 인권 의식이 많이 향상됐다는 것을 실감했다.

한편 형사 피의자로 조사를 받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머리가 좋고 법률지식이 충분하다고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복잡한 심적인 갈등을 겪게 되어 정상적인 상태가 유지되기 어렵다. 그 때문에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겸손·배려·경청’을 하더라도 알아야 할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더구나 그 당사자가 배운 것이 적고, 심성이 굳건하지 못할 때에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변호인의 조력이 필요하고 그 점에서 변호인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협력자이다. 따라서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변호인에게도 ‘겸손·배려·경청’의 자세로 귀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오히려 변호인과의 접촉을 가급적 피하는 것이 바람직한 판검사의 태도로 여겨지고 변호사 만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그로 인하여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 지연되고 왜곡된 진실이 대신하는 동안 피해는 국민의 몫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변호사와 경찰관 및 판검사의 야합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변호사가 의뢰인을 대변하기 위한 경찰관 또는 검사와의 직무상 대화가 소홀히 여겨지고 차단되어서도 안된다. 법정에서 충분한 변론이 이루어지기 힘든 우리의 재판 현실에서 그래도 직접심리주의를 고수하려면 변호인의 구두 변론권을 보장할 방법이 강구돼야 한다.

이를 위해 해당 사건의 검사, 변호사, 판사 3자가 법정에 부속된 시설이나 판사실 등에서 함께 만나 사건과 관련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제도적 개선도 아쉽다. 판사, 검사, 변호사 간에도 서로 ‘겸손·배려·경청’하는 마음가짐으로 대하는 것이 요망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기본적 자세가 지켜질 때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정의가 실현될 것이다.

손영재 법무법인 늘푸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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