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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그림이 있는 에세이
[그림이 있는 에세이]세 개의 둥지 - 박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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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07  17: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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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fe&history­평온으로 가는 여정:우형순 作.

속도감을 더해가는 세상이다. 한번쯤 멈추어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완전한 삶은 있을까.

삼월 말의 메타세콰이아는 지금 나목이다. 잎들이 풍성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새둥지들이 지금은 훤히 보인다. 쑥쑥 자란 나무 우듬지 가까운 곳에 튼실하게 지은 둥지는 한 나무에 한 개 또는 두 개가 있는 것도 있지만 드물게 세 개의 둥지가 층층이 있는 것도 있다. 시부모님이 갑자기 가시게 된 요양병원, 그곳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세 개의 둥지는 그냥 예사로 지나칠 수가 없다. 그 둥지는 나의 약점을 찌르는 무기가 되어 가뜩이나 습한 마음을 이리저리 흔든다.

시부모님을 찾아가는 길에 만난
나무 우듬지에 자리한 세 개의 둥지
삼대가 한집에 모여 사는 듯한 모습
세상의 흐름 따라 요양병원 모셨지만
직접 봉양하지 못하는 죄송함 북받쳐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주변으로부터 소개받은 사람은 대부분 장남이었다. 나는 책임이 덜하고 식구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을 수 있는 막내를 만나고 싶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만날 수 없었다. 부모님과 친지들은, 장남은 다음에 부모를 모셔야 하고 제사도 지내야 하니 고생바가지라며 첫째하고는 절대 결혼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운명인지 숙명인지 결국은 장남과 하게 되었다.

주변 분들은 다음에 어른들이 중병을 앓아도 큰며느리가 감당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귀가 아프도록 심어 주곤 했다. 그래서 결혼을 한 후부터 얼마 전까지 그 말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고 주어진 사명을 언젠가 감당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어른들을 끝까지 책임져야한다는 생각을 내 의식 속에서 한 번도 떠나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세월이 훌쩍 흐른 요즘 사회적 양상이 많이 바뀌어서인지 그동안 꼭꼭 지니고 있던 그 관념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손아귀에서 슬슬 빠져나가고 있다.

요즘은 아무리 효성이 지극한 자식이라도 병세가 악화된 부모를 돌볼 수 없을 때는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돌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들이 팽배해졌다. 그렇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결코 불효가 아니라고들 한다. 그리고 장남이 꼭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그 옛날의 불문율도 효력을 잃고 말았다. 부모의 재산을 자식들에게 공평하게 나누는 판에 장남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말들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장남에게 멍에를 씌울 것이 아니라 자식의 형편에 따라 부모를 모시게 해야 한다는 말들이 여러 지식인의 입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세상의 흐름을 눈으로 읽고 머리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어느 날 우리 가정에 들이닥친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기분을 가져야할지 아직도 혼란스럽다. 그동안 나를 옥죄고 있던 것들을 풀어달라고 빌지도 않았는데 둑이 무너지듯 그런 테두리들이 갑자기 녹아버렸기에 홀가분하면서도 뭔가를 놓친 듯 허하다. 지금 변화의 물결에 편승은 했지만 오랜 옛날부터 간직했던 그 책임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적인 후유증을 앓고 있다.

자식들이 매주 요양병원에 가는 당번을 정했기에 오늘은 우리 차례가 되었다. 며칠 전부터 필요한 물품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기에 간식거리만 장만하여 점심시간을 약간 벗어난 시간에 출발을 했다. 시부모님은 몇 달 전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은 후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의사의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시부모님을 그곳에서 뵐 때마다 언제나 마음이 편치 않다. 그곳 생활이 갑갑하다며, 자식들에게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할 때마다 그 감정은 더욱 복받친다. 요양병원이라는 시설이 없었다면 분명,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집에 계셨을 것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치면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저린다.

형제들이 의논하여 그곳으로 모셨지만 내가 할 일을 남의 손에 맡긴 것만 같아 좌불안석이다. 오늘도 불편한 마음을 안고 그곳으로 향하다 메타세콰이아의 나목에 층층이 지어진 둥지를 보게 된 것이다. 꼭 삼 대가 한 집에 모여 사는 것처럼 세 개의 둥지가 가까이 붙어 있어 그 나무를 보는 순간 또 다시 과거에 수없이 그렸던 밑그림이 불쑥 올라왔다. 남들은 편하게 볼 수 있는 그 둥지를 나만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런 책임감이 버무려져 있는 탓이리라.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면 지금처럼 요양병원에 쉽게 보낼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아마 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답이 내려진다. 처음부터 함께 살지 않았기에 더 쉽게 병원에 기대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사는 중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서 수발을 들지 않았을까 싶다. 따로 살았기에 병원으로 가시게 되었을 때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듯한 끈끈함이 덜했던 것이다.

간간이 얼굴을 내미는 어느 집의 자식들은 하루의 효도를 끝내고 아니 몇 시간의 효도를 끝내고 병원 문을 미련 없이 나선다. 한 나무에 하나의 둥지만 보고 온 것처럼, 그렇게 보인다. 다시 돌아갈 때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보고 손가락질할 세 개의 둥지, 하지만 시부모님은 같이 갈 수 없다. 오늘도 의사는 허락을 안 할 것이고 우리는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기에.

   
▲ 박서정

■ 박서정씨는
·2004년 좋은문학 동시 등단
·2007년 문학세계 수필 등단
·2008년 시흥문학상 수필부문 수상
·2011년 백교문학상 수필부문 수상
·2015년 <숨긴 말을 해> 출간

 

 

 

 

   
▲ 우형순

■ 우형순씨는
·개인전 14회
·한국선사미술연구소 연구원
·올해의 청년작가상 수상
·2016년 올해의 작가 개인전 심사
·한국미협·울산미협 회원
·동국대학교 대학원 외래교수
·울산문화예술회관 아트클래스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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