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해야
학생 스스로 계획·준비하는 수업

▲ 여창엽 장검중학교 교장

소설가 김훈은 <라면을 끓이며>라는 산문집에서 여행은 세계의 표정과 내용을 관찰하는 노동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은 익숙한 지역이든 낯선 지역이든 여행을 하게 되면 세상의 표정인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먼저 보고 사물의 속내인 내용을 파악하려 한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집들의 모양, 나무나 꽃들, 심지어 하늘의 색깔까지 사물과 현상의 표정을 먼저 관찰하게 된다.

물론 관찰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피사체가 눈으로 들어오는 표정과 내용만 바라보는 것이다. 눈으로만 보는 여행은 구경거리를 즐기는 일에 그치게 된다. 그러나 구경하듯이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보는 것은 사물이나 현상이 스스로 우리의 망막으로 들어와 대상을 즐기는 것으로 피동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반면 관찰은 관심을 가지고 주의해 자세히 살펴보는 행위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능동적 의지가 내포돼 있다. 피동적으로 보는 것은 휘발성이 강해 아무리 인상적인 것이라도 오래 기억할 수 없다. 반면에 능동적으로 관찰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도 애써 보려고 하고, 자신의 인식체계에 맞게 습득되는 것으로 장기기억 속으로 파지될 수 있다.

또한 김훈 작가는 세상의 표정과 내용을 관찰하는 일들을 일종의 노동이라고 했다. 노동(labor)은 본인의 의사에 반해도 의무감이 있어서, 보수를 받고 부담없이 하는 일(work)과 달라서 해야만 하는 강제성을 강요받은 행위다.

작가가 여행을 노동이라고 표현한 것은 삶의 안목을 넓혀주는 목적성을 가져야 하고, 세상의 표정과 내용을 인식하려는 마음의 긴박감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여행을 하고 나면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다. 결국 여행을 많이 하면 어제와 다른 오늘이 되고 삶의 변화가 생겨 사람은 성장하게 된다.

우리는 작가의 표현을 빌려서 수업과 학습을 표현한다면 한 시간의 수업은 학습을 위한 여행이여야 하고, 학생의 활동인 학습은 지식의 표정과 내용을 관찰하는 노동이여야 한다. 모든 지식의 습득은 관찰에서 시작된다. 학생들이 관찰하도록 기회를 주는 학습이 학생 활동 위주의 수업이다. 그러한 수업이 이루어지려면 학생들은 관찰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교사는 학생에게 관찰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연습시키는 훈련을 해야 한다.

피카소의 아버지는 미술 교사였다. 어린 피카소에게 비둘기 발만 반복해서 그리게 했다. 그가 15세가 되자 사람의 발, 신체 등을 다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한 사물을 몇년 동안 관찰해 그림으로 기록하면서 관찰하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처음 보고 그린 비둘기 발의 기록과 두 번째, 그리고 계속 반복될 때마다 조금의 관찰 내용이 다른 것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피카소는 똑같은 비둘기 발이지만 몇 년 뒤에는 자신이 상상한 이미지도 함께 기록하게 되어 그 기록은 실제 모습에서 벗어나 추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피카소는 추상화가로 유명하다. 그도 미술을 처음 배울 때는 세밀화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것은 모든 학습의 시작은 사실적인 지식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능력에서 시작한다는 증명이다. 학교에서 수업하는 교과마다 관찰하는 방법을 연습하여 관찰능력이 생겨난다면 그것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 이러한 능력은 선천적이기보다 연습을 통해 향상되어진다. 학생들이 새로운 관찰을 하겠다는 의지는 참을성과 끈기가 있어야 한다.

수업을 여행이라고 한다면 그 여행은 어떤 모습이여야 학생들이 제대로 관찰할 수 있겠는가. 교사는 한 시간 수업에서 30여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지식을 탐구하는 작업을 한다. 이 지식들이 먼저 알고 있는 교사로부터 학생들의 인식 범주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교사가 주어진 계획에 따라가는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활동내용을 준비하는 자유여행 즉, 배낭여행을 함께 떠나는 수업이 된다면 관찰 연습이 이루질 수 있다. 기존의 강의식 수업이 가이드가 정해준대로 따라다니는 수업이라면, 자유여행은 학생활동 중심 수업으로 교사가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으로 세상의 표정과 내용을 관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스스로 관찰하여 얻은 지식은 오래 기억된다. 수업은 학생들과 함께 떠나는 즐거운 여행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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