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영진 사회문화팀 차장

24일, 한 노신사가 사무실을 방문했다. 자신이 낸 책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울주군 두서면이 고향인 팔순을 바라보는 김종도 할아버지. 언어학(영어)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평생을 대학교수로 지내다가 10년 전 퇴임했다. 그가 들고 온 책은 두툼한 두께의 상중하 3권짜리 대하소설이었다. 중국의 유명대하소설 <사세동당>(四世同堂·노사 저)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전공인 영어권 소설을 마다하고 중국어 소설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퇴임 후 난생 처음 중국어에 도전하게 됐는데, 좀 더 재미있는 공부법을 고민하다 결국 원어로 된 소설책을 읽는 법을 택했다.

입문과정의 실력으로는 하루 한 페이지 넘기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매일 끊임없이 정진하다보니 차츰 속도가 붙었고 어느 순간 400자 원고지 3700장에 이르는 육필원고가 쌓이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이달 초 책이 나왔다. 중고서점에서 사세동당을 집어든 지 딱 8년 만의 일이라고 했다. 노벨문학상 후보작인 사세동당이 처음으로 한국어 판으로 출간된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삶을 멋지게 가꾸는 노인을 만날 때가 있다. 타성에 젖어 나태해진 정신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시(詩)를 쓰는 세차장 할머니를 인터뷰했을 때도 그랬다. 칠순의 김옥선 할머니는 남산로 주유소에서 세차일을 한다. 김 할머니는 맑은 날이 싫다고 했다. 세차를 하러 오는 차가 많아서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한 평 남짓 작은 방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시를 쓰는 비오는 날이 제일 반갑다. 그렇게 쓴 시작으로 2권의 시집을 펴냈다.

이야기 할머니로 유명한 박진숙 할머니도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선정한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찾아가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봉사활동이 그의 주요 임무다. 유방암을 앓았던 그는 암환자가 겪는 좌절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병동에서 그들을 위로하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노년을 보내는 어르신을 만날 때면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노년을 대비하는 지혜와 이를 실천하는 자세는 모두의 과제지만 제대로 대비하는 이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몇해 전부터 본보에서도 ‘늙어가는 울산’을 주제로 수차례 기획물로 다뤘지만 정작 제대로, 깊이있게 스스로의 노년을 고민했던 적은 없었다.

최근 살펴본 통계청자료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울산은 2040년까지 65세 이상 노령인구 증가율(229.9%)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 울산의 노령화지수를 분석해보면 2014년 유소년 인구 100명당 53명에 불과하던 노령인구가 2040년에는 237명으로 늘어난다. 무려 347.9%의 증가율로 이 역시 전국 최고치다. 통계의 예측이 현실화된다면 미래 우리 아이들의 부양의무가 얼마나 버거울지 상상이 안된다.

얼마전 은퇴 베이비부머를 위한 울산내일설계지원센터가 각종 프로그램을 개강했다. 노인세대에게 인생설계와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각종 강의와 실질적인 연계사업도 운영한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노년을 보내는 지역 어르신을 제대로 알려 잠재적 노년 세대가 제대로 준비할 수 있도록 본보기를 알리는데 주력해 주기를 바란다.

홍영진 사회문화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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