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호령하던 지역 조선업 벼랑 몰려
자동차·석유화학 등 주력산업도 위기
혁신 없으면 말뫼의 전철 밟을수도

▲ 김창식 디지털뉴스팀장

조선 메카 울산 현대중공업 본사 해양사업본부에는 갠트리 크레인(일명 골리앗 크레인)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세계 최대 규모로 과거 유럽 조선업의 번영을 상징하던 이 시설은 현대중공업이 2003년 스웨덴 말뫼시의 코컴스 조선소로부터 단돈 1달러에 매입, 세계 조선업의 중심이 유럽에서 한국으로 넘어왔음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도 했다.

한국의 수주공세에 밀려 경쟁력을 잃은 코컴스 조선소가 파산하고, 크레인을 한국으로 옮기게 되자 스웨덴 매체들은 ‘말뫼가 울었다’며 조선업의 종말을 고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말뫼의 눈물’을 뒤로한 채 세계시장을 휘젓던 한국(울산)의 조선업 역시 13년 만에 말뫼가 걸어온 전철을 밟아야 할 운명에 처했다는 점이다.

글로벌 조선 빅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는 조선·해양플랜트 수주 감소와 경쟁력·수익성 저하로 사상 최악의 불황에 직면해 있다. 저가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의 맹렬한 추격과 기술력과 엔저에 힘입은 일본 조선업체에 밀리면서 수주절벽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정주영, 이병철, 김우중 등 세계적인 CEO의 열정과 집념으로 쌓아올린 금자탑이 일순 허물어질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1970년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짜리 지폐 한 장과 황량한 미포 바닷가에 백사장 사진 한장 달랑 들고 ‘봉이 정선달’이 되어 은행과 선주를 설득해 미포벌판에 지은 조선소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조선메카로 변모한 울산에는 한숨소리만 가득하다.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동구지역은 1년새 아파트 가격이 10% 가량 떨어지는 등 지역 경기가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

조선업체의 일감이 떨어진 인근 경남 거제, 통영 등 지역 경제도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다. 조선산업의 대량해고가 현실화되면 거제경제도 무너질 수 있다면서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조선업계는 지난 20여년간 글로벌 업황 호조에 편승해 미래에 대한 준비와 비용관리를 소홀히 한채 돈 잔치를 벌였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7조원대 적자를 낸 조선 3사의 직원 평균 연봉은 7475만원으로 중소기업의 2배에 달했다. 파업을 앞세운 거대 노조의 힘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전체 인원의 10% 이상을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 형식으로 줄일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자 노조는 임금 인상을 포함해 직무환경수당 상향 조정, 퇴직자 수에 상응한 신규 인력 채용, 통상임금 1심 판결 결과 적용 등을 추진, 사회적 파장이 일고 있다. 위기속에서도 이 회사 노사는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에피루스의 왕 피루스가 로마를 상대로 수차례 승리를 거두었지만 병력의 3분의 1 이상을 잃을 정도로 희생이 크자 “이런 승리를 또한 번 거두었다간 우리가 망할 것이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이 에피루스의 승리를 경제학에선 ‘승자의 저주’ 개념으로 정립했다. 비록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승리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투입,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논리다. 조선업계도 ‘승자의 재앙’에 빠지는 우를 범한 것은 아닐까.

울산은 비단 조선뿐만 아니라 자동차, 석유화학산업까지 50년 고도성장을 멈춘채 후발주자인 중국에 따라잡히고 선진국에 치이면서 ‘퍼펙트 스톰(총체적 난국)’에 직면하고 있다. 산업구조가 보다 다양화되고 노사문화가 혁신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울산은 ‘냄비 속의 개구리’ 처럼 서서히 죽어(쇠퇴)가게 될 것이다. 울산은 이미 제2의 디트로이트, 제2의 말뫼와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김창식 디지털뉴스팀장 goodgo@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