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정공원·중부도서관은 너무 협소
객사 복원 대신 유구 보존으로 전환
유적 위에 시립미술관 지으면 될 터

▲ 정명숙 논설실장

울산시립미술관이 다시 중구 원도심으로 되돌아왔다. 울산시가 혁신도시로 옮겨 가려던 계획을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완전 원점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옛 울산초등학교 부지가 아니라 바로 옆 북정공원과 중부도서관 부지에 미술관을 지을 계획이다. 중부도서관은 이전한다. 언제가 될지 모를 객사 복원을 위해 울산초등 부지는 텅 비워둔 채 말이다.

미술관을 원도심에 짓기로 한 건 다행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북정공원(3293㎡)은 너무 협소하다. 중부도서관(2653㎡)을 합친다고 해도 좁기는 마찬가지다. 울산초등학교(1만5914㎡) 부지로 정했을 때도 일부에서는 비좁아서 안 된다고 야단들이었는데, 하물며 5946㎡에 시립미술관이라니.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접근성과 주변 인프라를 고려하면 이곳 보다 더 나은 곳을 찾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생각을 좀 바꾸자. 발상을 전환하면 이곳도 얼마든지 넓은 공간이 될 수 있다. 객사의 원형 복원 계획만 접으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대신 시립미술관 부지를 울산초등은 물론 북정공원, 중부도서관, 동헌까지 아우르는 공간으로 넓혀야 한다. 울산시의 객사 복원 계획은 미술관을 혁신도시로 옮기는 대신 관광객들을 찾아오게 해서 원도심 상권활성화에 도움을 주겠다는 지역주민들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복원한 건축물이 관광지가 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문화유산의 원형만 훼손할 뿐이다.

오히려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방법은 주춧돌 등의 유구를 있는 그대로 보존, 활용해서 미술관을 짓는 것이다. 1층을 필로티(Pilotis)로 해서 객사의 유구를 살리든지, 유구 위에 강화유리를 덮어 건물을 올리면 문화유적 위를 걸어다니며 작품을 감상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미술관 건립의 장애로만 생각했던 객사의 유구가 오히려 매력적인 관광자원이자 ‘1호 소장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옛 울산의 위상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학성관의 정문인 제승문이나 남쪽 문인 진남루 중 한 채만 복원해도 충분하다. 그래서 부지가 부족하면 제 2전시실을 북정공원에 지으면 된다. 미술관 건물이 1채가 돼야 할 이유는 없다. 예술의전당이나 국립현대미술관도 건물 1채로 이뤄져 있지는 않다. 동헌도 미술관의 사무동이나 아트숍 등의 부대시설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러시아의 에르미타쥬나 파리의 루브르도 궁전을 그대로 활용해서 세계적 미술관이 됐다.

문화재청도 최근 문화재 보호의 기조를 새롭게 하고 있다. 문화유산 가치 증진 및 국민공감 확산을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문화재 활용을 적극 권장한다. 복원사업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성곽의 경우에도 복원보다는 보존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때문에 문화재청과의 협의도 어렵지만은 않을 것으로 본다. 외국의 이름난 문화유산도 기울어지거나 무너지거나 기둥만 남은 경우가 허다하다. 복원된 새 건축물이 아니라 천재지변이나 전쟁을 겪은 이후의 상태 그대로 보존된 건물이 관광자원이 되는 것이다.

중부도서관도 이전할 필요가 없다.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는 추세다. 없는 도서관도 끌어들여야 할 판국에 있는 도서관을 이전시키는 것은 엄청난 손실이다. 증개축을 통해 도서관에 미술관 기능을 더해야 한다. 도서관과 미술관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면서 지역주민들과 더불어 미래의 문화유산을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시립미술관이 원도심에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정명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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