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적 혁신만으로는 생존에 한계
울산이 변하려면 제조업 고도화 못잖게
소통·상생의 소프트웨어적 진화 필요

▲ 정구열 UN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지난 달 서울에서 2016 GE(제너럴 일렉트릭) 이노베이션 포럼이 개최됐다. 이 포럼에서 GE의 이멜트 회장은 성장이 지체되고 변동성이 커지는 경영환경에서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면서 “저성장 시대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리스크이며, 이런 기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GE는 1878년 에디슨이 설립한 전기조명회사를 모태로 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대원군 시대에 문호개방을 놓고 권력투쟁이 한창이었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시대로 ‘기술입국’을 국시로 삼아 근대화의 기초를 닦았다. 그 후 기술입국은 ‘과학기술입국’, 1989년 이후로는 ‘과학기술창조입국’으로 이어져 기술강국의 틀을 마련했다.

GE의 지난 138년간 역사는 기술혁신과 변화의 역사다. 1906년에 세계 최초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해 NBC방송의 모체가 됐으며, 1913년 개발된 X선은 헬스케어 사업, 그 후 전기세탁기, 냉장고, 제트엔진의 개발로 가전사업, 항공사업 등으로 확대해 가며, 중공업 및 금융 중심의 세계 초우량 기업으로 성장해왔다. 1981년도에는 경영의 귀재로 불리는 잭 웰치가 부임해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성장한계에 부닥친 GE를 살려내고, 미국 대표기업으로서 전성기를 이뤘다. GE는 그 후 현 CEO인 제프리 이멜트의 등장으로 또 다시 변신중이다. 그는 “과거의 성공은 잊어라”라고 외치며 중공업 중심의 GE를 “2020년까지 세계 10대 소프트웨어 회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불편하더라도 변하지 않으면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 제조업의 벤치마크였던 GE가 이제 생존열쇠는 산업인터넷이라고 선언한다.

GE의 변화의 원동력은 단지 기술혁신에서 온 것만은 아니다. 잭 웰치는 ‘벽 없는 조직’으로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교육과 학습으로 조직이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웠다.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해 사라진 기업은 수없이 많다. 한 때 전자업계의 대명사였던 ‘소니’도 변화에 민감하지 못한 기술 오다꾸(技術狂)적 자만심으로 도태됐으며, ‘노키아’도 새로운 모바일 생태계에 대응하지 못해 사라졌다. 조직내부에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재 상황에 안주하려는 것이 생존에 가장 위험한 적이다.

울산도 중공업중심의 제조업을 ICT와 융합해 고도화하고, 3D프린팅, 바이오, 이차전지 등 신사업을 창출해 새로운 도시로 변신하고자 한다. 그러나 울산이 변화하려면 이러한 하드웨어적 혁신만으로는 안 된다. ‘혁신의 확산’ 이론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로저스(E. Rogers) 교수는 혁신을 하드웨어적 혁신과 소프트웨어적 혁신으로 나눈다. 소프트웨어적 혁신은 기존의 사고가 새로운 가치와 문화로 소통되고 변화되는 것으로 일하는 방식, 기업문화 등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첨단기술과 신성장동력이 있어도 이것이 구성원들에게 제대로 소통되고 수용되지 못하는 사회는 변화하기 힘들다. 최고경영자가 열정을 가지고 추진해도 전 직원이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취임 후 10만명 이상을 해고한 철(鐵)의 경영인 잭 웰치도 시간의 75%를 사람관계 일에 투자하고, 지금은 세계 최고급 리더십 교육기관이 된 ‘크로톤빌 리더십센터’를 세워 직접 직원을 교육하고 설득했다. 이멜트 회장도 “성장을 원하는 정부는 교육에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육에 투자하라는 말이다. 위기의 울산이 변화하려면 제조업의 고도화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가 먼저 변해야 한다. 노·사 간, 대기업·중소기업 간 갈등으로 점철된 울산에 이제 소통과 상생하는 소프트웨어적 지역문화를 창출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이것이 지난 총선이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울산에 변화와 혁신을 교육하는 ‘리더십 사관학교’가 하나 있을 만하다. 138년 전 GE가 생겨날 즈음, 분쟁으로 근대화의 때를 놓쳐버린 우리가 이제 다시 ‘선진화’의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울산의 모두가 이제 과거의 성공을 잊고 정말로 변화해야 한다.

정구열 UN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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