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영진 사회문화팀 차장

지난 달, 서울과 수원, 부산 등에서 활동해 온 문화예술기획자를 우연히 만났다.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그 지인은 암각화가 아직 세계유산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는 듯 했다. 그는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추진해 온 ‘조선통신사 세계(기록)유산 사업’을 주도한 사람이다. 조선통신사는 유네스코가 독려하는 ‘평화를 고리로 한 다국 공동등재’에 꼭 부합한다. 결국 사업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한일양국이 공동으로 신청서를 작성했고, 유네스코 심의만 남겨뒀다. 아마도 무난한 통과가 예상된다. 껄끄러운 한일관계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이 성과를 거둔데는 부산과 히로시마가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역할 못지않게 부산문화재단과 일본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 등 그 도시의 민간전문조직이 흔들리지않는 구심점이 돼주었다.

울산은 지난 수십년 간 ‘대곡천 암각화군’의 세계유산등재를 추진해 왔다. 경기불황 앞에서 요동치는 ‘산업수도’ 타이틀과 달리 ‘세계유산 보유도시’는 대체불가한 위상과 자부심이 돼 줄 수 있다.

하지만 울산의 행보는 안일하기 그지없다. 그러면서도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무능한 정치, 게으른 행정, 관심없는 시민 등 각계의 행태는 식수문제, 임시물막이댐, 생태제방안 재논의, 또다시 식수문제 등으로 논란만 계속하며 결국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게되는 부작용만 낳고 있다.

여기에 논란만 끝나면 언제라도 등재가 가능한 줄 아는 ‘근거없는 자신감’도 문제다. 이는 세계유산등재의 험난한 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이야기다. 세계유산 등재는 3단계의 난관을 통과해야 한다. 1단계가 잠정목록에 포함되는 것이라면 그 다음은 1년에 한 건씩만 추천하는 정부신청 대상으로 선정돼야 한다. 마지막 단계는 유네스코 총회에서 전 세계 챔피언급 유산과 또 한번 치열한 승부를 겨루는 일이다. 총 1031점의 세계유산 중 암각화와 관련된 유산은 현재까지 20건이다. 각 대륙의 암각화 세계유산과 어떤 차별성을 이루는지 대곡천 암각화군의 새로운 가치인증 전략이 절실하다.

대곡천 암각화군은 지난 2010년 잠정목록에 올라 이제 겨우 한 고비를 넘겼을 뿐 7년 째 진전이 없다. 잠정목록 안에서는 현재 15건의 유산이 경쟁을 펼치고 있다. 최근 잠정목록이 된 유산들은 지자체나 민간후원단체의 추진력을 등에 업고 2~3년 내 등재를 목표로 거침없이 질주한다. 앞서 부산의 사례처럼 시민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통합기구가 든든한 배경이다. 하지만 이렇다 할 후속조치없이 20년 이상 잠정목록 속에서 있는 둥 마는 둥하는 유산도 있다. 대곡천 암각화군이 꼭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홍영진 사회문화팀 차장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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