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세로만 생계유지 불가능한 구조
문학인 절반가량이 다른 직업가져
휴가철 독서, 문인에 힘보탤 수도

▲ 황정욱 연합뉴스 정치담당 에디터

우리 문학계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소설가 한강이 영어권 최고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것이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수상작은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다.

영국 현지시간으로 지난 16일 공식 발표됐는데, 같은 날 시인 최영미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자신이 저소득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근로장려금 대상이 됐다는 내용이다.

최영미는 중·장년층에겐 향수의 한 컷이다. 94년도에 나온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당시 빅히트작이었다. 지난해까지 50만부 팔렸다고 하니 시집 치고는 어마어마한 판매부수다. 최 시인의 나이를 따져보니 벌써 50대 중반이다. 20대 후반의 최영미를 기억하는 필자로선 세월의 무상함에 새삼 마음이 저릴 뿐이다.

최 시인의 페이스북 글은 이렇다. “마포세무서로부터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내가 연간소득이 1300만원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이란다. 공돈이 생긴다니 반갑고 나를 차별하지 않는 세무서가 기특하다. 그런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최 시인이 받게 될 근로장려금은 연간 59만5000원이다. 최 시인이 급히 자구책 마련에 나서 취한 행동은 아는 교수들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강의를 달라고 애원하고, S출판사에 전화해 2년 넘게 밀린 시집 인세를 달라고 해 89만원을 받은 것이다.

최 시인의 어려운 사정이 이해가 가는 점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조사한 데 따르면 문학 종사자들의 평균 연봉은 214만원이다. 순수하게 문학 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월 20만원도 안 되는 셈이다.

이런 소득으론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문학인 절반가량이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이유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최 시인도 열악하기 짝이 없는 문학인의 저소득 구조에 단단히 엮여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어찌 보면 시인은 가난이 숙명인지도 모른다. 돈 벌자고 시 쓰는 시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시는 문학 장르 중에서도 난이도가 최상급에 속한다. 오죽하면 시가 안 되면 소설을 하고 이도 안 되면 평론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시작(詩作)은 정신적 소모와 고통이 보통 드는 것이 아닌 난해한 철학적 작업이다. 시의 정수는 삶을 통찰하는 상징적 압축인데,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타고난 자질이 있어야 할 듯하다.

물론 쉽게 쓰는 시인도 있다. 필자가 아는 한 시인. 유명한 산의 등산로 초입에 자신의 시를 돌에다 새겨 내걸었는데 수준은 그닥 높지 않다. 식당을 하는 시인의 와이프는 “하도 졸라서 비싼 돈 들여 새겨줬다”고 한다. 시인 타이틀이 좋긴 해도 생계를 와이프에 의지한채 또래 시인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풍류를 벗 삼아 노는 한량 생활을 하다보면 그렇고 그런 작품만 나온다. 인생에 갈래가 있듯 시인, 소설가도 갈래가 있다.

다시 낭보로 돌아가,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만 하더라도 한국의 대표적 소설가다. 차기 노벨문학상 후보로는 시인 고은과 소설가 황석영 등이 근접한 것으로 평가된다. 내면의 공유, 감성의 세계화, 가치의 보편화가 이들 문학의 힘이다.

벌써 여름이 성큼 와 있다. 이번 휴가 때는 읽어볼만한 책 몇 권과 벗 삼아도 좋을 듯하다. 색다른 휴가 경험도 되고 문학인들에게 힘도 보탤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될 법도 하다.

황정욱 연합뉴스 정치담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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