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퇴 ID만 있고 본문에 개인 식별 내용 없으면 ‘잊힐 권리’ 행사 못 해

다음 달 한국판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이 시행되면 인터넷에 떠돌던 나의 부끄러운 자취(일명 ‘흑역사’)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듯 몽땅 없앨 수 있을까?

아니다. 본인 사진이나 고향 등 ‘작성자가 나’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내용이 전혀 없는 게시물은 여전히 블라인드(열람 금지) 처리가 안 된다.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사용자 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25일 IT(정보기술) 업계에 따르면 흑역사를 지우고 싶은 네티즌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문제가 된 게시물이 ‘내가 작성한 소유물’이란 사실을 구체적 증거로 포털 등 온라인 사업자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본인 신분증을 내민다고 증거 제시가 끝난 게 아니다. 사람들이 보통 잊힐 권리를 행사하려는 콘텐츠는 과거에 탈퇴한 사이트의 게시물이다. 그런데 국내 법령상 온라인 사업자는 사용자가 탈퇴하면 저장하던 개인 정보를 모두 폐기하게 되어 있다.

즉 탈퇴 후 신분증을 갖고 특정 ID의 게시물을 바로 지워달라고 해도 사업자로서는 ‘특정 ID = 아무개’라는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게시물 내용으로 본인 확인을 해야 한다. 콘텐츠에 사진, 출신학교, 주소, 가족·교우관계 등 개인 신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어야 한다. 이에 맞춰 주민등록등본이나 학교 졸업증명서 등 서류를 내면 자신이 썼다는 게 확인된다.

온라인 평판관리 업체들은 이 때문에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이 큰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지우고 싶어하는 흑역사 중에선 자신에 대한 언급 없이 다른 개인·단체·지역을 노골적으로 비방한 글이나 만화 등 저작물을 그대로 퍼온 게시물이 많은데, 이런 사례는 본문에 탈퇴한 ID만 남아 있을 뿐이라 구제를 받을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평판관리 업체인 산타크루즈컴퍼니의 김호진 대표는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인터넷 사업자가 탈퇴 사용자의 개인 정보를 폐기할 때 해당 기록의 사본을 특정 공공 보관소에 영구 보관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 탈퇴 ID만으로 본인 입증을 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의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이처럼 개인 식별 내용이 없는 게시물까지 블라인드 처리를 허용하진 않을 방침이다.

탈퇴한 ID만으로 게시물을 사라지게 해주면 잊힐 권리 남용이나 인터넷 검열 등 우려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탈퇴한 사용자의 개인 정보를 (잊힐 권리 행사를 위해) 어딘가에 보관하려면 현행 법규를 모두 고쳐야 한다. 무리한 조처라고 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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