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양산 천태사

▲ 천태사 입구에서 사찰 경내를 지나 등산로를 20분가량 오르면 용연폭포를 만날 수 있다. 나무데크 길을 따라가다 보면 경사 70도 이상의 깎아지른 20m높이 암벽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진다.

울산과 양산을 잇는 배내골은 온통 초여름 녹음으로 우거져 있다. 지난 봄 매화축제가 열렸던 양산 원동면 영포리 매화마을을 거쳐 천태사로 향했다. 마을은 백색 또는 연분홍색 매화 대신 빨간 장미꽃 넝쿨이 담장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매화마을 거쳐 천태사 가는 길
연분홍 매화 대신 장미가 반겨
바위 절벽 속에 지어진 천태사
16m 달하는 아미타부처 장관
암벽 타고 흐르는 용연폭포엔
밍크고래 닮은 바위 눈길 끌어

배내골과 삼랑진이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1022호 지방도를 따라 5분 정도 가다보니 천태사 입구다. 절 입구에는 ‘天台山通天第一門’(천태산통천제일문)이라고 적힌 일주문이 도로 옆에서 버티고 서 있다. 하늘로 통하는 첫 번째 문이다. 통천제일문의 단청은 톡톡 튀는 색깔이지만 기와지붕과 잘 어우러진다. 천장 단청이 아주 단순한 색상에 역시 단순한 연꽃무늬뿐이다. 절 안으로 조금 걷다보니 종각이 나온다. 비스듬한 오르막으로 펼쳐지는 장면 하나하나가 작은 절 치고는 꽤 운치가 있다.

▲ 울긋불긋 연등이 사찰 경내 하늘을 배경으로 애드벌룬처럼 떠 있다.

양산 천태사는 천태산의 등반 시작점이자 원점회귀점이기도 하다. 천태산은 천성산, 영축산과 더불어 양산의 3대 명산에 속한다. 양산8경 중 제6경이기도 하다. 큰 바위를 태산같이 쌓아놓은 것처럼 보여 천태암산이라고도 부른다.

천태산은 예부터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할 뿐 아니라 남서쪽으로 낙동강, 북서쪽으로 양수발전소댐, 그리고 동북쪽으로 배내골과 이어져 산행지로 꽤 유명세를 떨친다. 원효 대사가 창건하고 경보, 대휘, 경봉 스님 등 당대 고승들이 머물렀던 사찰이다.

종각 앞에 서있는 감나무 한 그루는 올 가을에 얼마나 많은 감을 맺을지 가지를 늘어뜨렸다. 부처님 오신 날이 지났어도 찾는 발길이 이어진다. 칠성각과 산신각이 한 지붕 아래 있다. 빨갛고 노란 연등이 하늘과 절 사이에서 애드벌룬처럼 떠 있다. 그렇게 중생들의 가냘픈 소원에 희망을 날려 보내려는지….

▲ 용연폭포 상단에 계곡을 역류하는 듯 밍크고래 형상의 바위가 있다.

천태사는 계곡에 지어진 절이다. 절을 바위절벽이 휘감고 있는 듯하다. 아무 생각 없이 퍼질러 앉았다가는 엉덩이를 떼기가 싫을 것 같다.

석등 길을 따라 올라온 곳에는 무량수궁이 있다. 천태사에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대형 마애불이 모셔져 있다. 웅장한 규모의 아미타부처님과 좌우의 협시보살의 높이는 16m다. 부처님 앞에 서면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경내에 종일 울려 퍼지는 은은한 불경소리도 참 좋다.

천태석굴은 소원 성취가 빠른 기도처로 꽤나 이름이 나 있다. 수많은 신도들과 스님들이 기도 성취를 많이 한 영험도량이라고 전해진다.

▲ 용연폭포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천태산은 기암괴석 절벽이 절경이다.

천태사를 뒤로 하고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이 눈에 띈다. 절 입구에서 도보로 천태사 경내를 지나 등산로를 20분가량 오르면 용연폭포를 만날 수 있다. 나무데크 길을 따라가다 보면 경사 70도 이상의 깎아지른 20m높이 암벽에서 물줄기가 쏟아진다. 양산시청 홈페이지에는 용연(龍淵)폭포, 산객들은 웅연폭포라고 부르고,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추연(椎淵)폭포로 기록돼 있다.

폭포 뒤로는 하늘이 펼쳐져 물줄기가 마치 허공에서 쏟아지는 듯하다. 청량한 물소리와 함께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면 세상의 온갖 근심이 사라진다. 데크길을 살짝 빠져나와 폭포 상단에 섰다. 계곡에서 바위 형상이 밍크고래를 너무 빼닮은 역류하는 고래 한 마리를 만났다. 고래는 태화강을 거슬러 배내골까지 왔다가 길을 잃었을까? 동해와 남해를 거쳐 낙동강을 타고 왔을까? 용연(龍淵)폭포의 용을 만나러 온 것일까? 하릴없지만 신나는 상상도 해본다.

산 남쪽의 천태각(천태정사)에서 폭포까지 계곡은 30여리에 이른다. 긴 계곡은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채 청명하게 흘러내린다. 임진왜란 때 밀양 부사 박진이 이곳 일대에서 왜적에 대항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후퇴했던 곳이라고도 한다.

산 정상에 이르기 전에는 조그마한 암자가 있다. 그곳 골짜기를 오르면 기암이 절벽을 이루고 정상에 오르면 넓은 바위가 평지처럼 놓여있다. 마치 하늘 밑 구름 같은 느낌을 준다.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주위경관에 취하다 보면 도원경(桃源境)에서 신선들과 장기나 바둑을 두면서 현세의 시름을 잊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고 한다. 사시사철 물이 흐르고 있는 여름 사찰로는 아마 국내에서 손꼽을 수 있는 사찰일 것 같다.

‘소라계곡 햇빛 머금고 힘써 반만 벌렸는데 마고선녀 머리감으러 구름타고 내려오네.’ 천태산 정상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낙조를 읊은 팔경시 중 천태낙조의 첫 시구다.

산을 내려와 1022번 지방도를 따라 삼랑진 쪽으로 가면 커다란 호수가 나타난다. 해발 401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삼랑진양수발전소. 상부 댐과 하부 댐으로 구성된 양수발전소의 상부는 도로에서 보이지 않았다.

글·사진=박철종기자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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