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생을,
아름다운 하루하루를
두루마리 휴지처럼 풀어 쓰고 버린다
우주는 그걸 다시 리필해서 보내는데
그래서 해마다 봄은 새봄이고
늘 새것 같은 사랑을 하고
죽음마저 아직 첫물이니
나는 나의 생을 부지런히 풀어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박정옥 시인

생을 리필 한다니 얼마나 환상적이고 매력적이고 신나는 일이 될까요. 식당, 카페에서 음식과 커피를 리필 하고, 더도 덜도 말고 토막 난 하루를 리필 하고 휴양지에서 쓸쓸하게 보낸 이틀을 리필 하여 누구에게 반쯤 엎질러진 마음을 아차! 다시 리필 하는, 이런 일생은? 글쎄요.

같은 장소에서 매일 벽돌을 쌓고 다음날 다시 허물고 쌓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치를 떨게 했던 형벌이었다고 솔제니친이 고백했듯이 리필이여!

끊임없는 순환의 역사가 우주의 거대한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자연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담담하게 경고하는 것 맞나요? 세상에서 어떤 경우라도 죽음만큼은 첫물이니 시인은 인간의 무력감 내지는 자조의 탄식으로 ‘나는 나의 생을 부지런히 풀어 쓸 수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 즉 삶에 대해 좀 더 진지해질 필요성을 짚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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