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진태 씨 등 오바마 오는 날 히로시마 한국인위령비 앞에서 호소

▲ 한국인 원폭 피해자협회 관계자들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廣島)를 방문하는 27일 히로시마평화공원내 한국인 위령비에 헌화한 뒤 위령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바마 대통령과의 면담을 호소했다. 협회 관계자들이 위령비 앞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들의 전쟁은 태어나는 날부터 시작됐다”

“원폭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면 세계의 평화는 없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비석 앞에서 우리에게도 사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廣島)를 방문일인 27일 오전 히로시마평화공원 내 한국인 위령비 앞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전날 일본으로 건너온 심진태(73)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 등 한국인 원폭피해자 6명과 한국 시민단체 관계자 등 총 10명의 히로시마 방문단은 한국인 위령비에 헌화한 뒤 한일 취재진 수십명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오바마의 일본 방문이 일본의 피해만 부각하고 식민지 억압과 피폭이라는 이중의 희생을 당한 한국인 피폭자들의 존재는 여전히 무관심의 그늘에 방치돼 있다고 강조했다.

심 씨 등은 오바마 대통령 뿐 아니라, 이날 그와 동행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도 사죄를 요구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대량 발생시킨 배경인 식민지배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정순(57)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은 뇌성마비를 가진 아들(34세)과 찍은 사진을 기자들에게 보여주며 눈물로 호소했다.

피폭 2세인 한 회장은 “전쟁은 그때(1945년 8월) 끝나지 않았다”며 “저희는 태어나는 날로부터 전쟁을 시작했다”며 “대물림되는 이 잔인한 모습을 여러분은 기억해달라. 오바마 대통령도 이 모습을 보고 사죄와 배상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을 직접 만나지 못하지만 이렇게 우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음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며 “핵 피해자가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저희는 죽을 때까지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문단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한 인정, 조사, 사죄, 배상을 요구한다’는 제목으로 쓴 서한을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전날 방일 전 주한미국대사관에 전달하려 시도했지만 전달하지 못한 서한의 내용을 보도해달라고 호소했다.

오바마에게 보내는 이 서한문에는 “귀하가 히로시마를 방문하면 먼저 아무런 죄도 없이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로 인한 강제 징용과 피폭이라는 이중, 삼중의 고통 속에서 죽어간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찾아 사죄하라”고 적었다.

더불어 “귀하의 히로시마 방문이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부각시키고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아베 정권의 의도에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서한은 또 “(한국인 원폭 피해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진심어린 사죄와 배상을 요구한다”며 “한국인 원폭 피해자의 고통이 개인적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배와 강점, 미국의 원폭 투하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할 때 미국과 함께 일본 정부의 피해사실 인정, 조사, 사죄 및 배상은 당연한 소임”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회견에는 한국 언론 뿐 아니라 일본 언론과 AP통신 등 외신에 소속된 총 30명 안팎의 취재진이 자리해 큰 관심을 보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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