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참외, 사랑의 샘물을 긷다

 

<탈고(脫稿) 안 될 전설(傳說)>. 소설가 유주현의 수필 제목이다. 유주현은 참외가 익어가고 있는 원두막에서 유연자적하게 여름을 나고 있었다. 장대비가 몹시 쏟아지며 뽀얀 우연(雨煙)이 하늘 땅 사이에 꽉 찬 어느 날, 작가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아가며 서두르지 않고 걷는 여승을 원두막에서 만나게 된다.

여승의 단아하고 고적한 아우라에 깊은 인상을 받은 작가는, 며칠 후 한 여승을 찾는 한쪽 팔을 잃은 상이군인을 만나게 된다. 복잡한 심경을 뒤로 한 채 여승이 있다던 불암사를 말해준다. 다음날 참외 밭머리에서 승복차림의 여승이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석상이 되어 젊은이를 배웅하는 모습을 본다. 두 남녀의 별리(別離)는 작가에게는 전설이 되었고, 이 전설을 영원히 탈고하지 않을 작정으로 소중히 간직하는 것으로 이 수필은 끝맺는다.

임신부의 필수영양소 엽산을
과채류중 가장 많이 함유한 참외
하루 한개만 먹어도 필요분 충족
씨붙은 부분까지 먹어야 더 효과
체내 나트륨 배출효과도 탁월

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쓴 것이다. 서정적이고 사랑과 이별의 문제를 다루면서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상처를 그려낸다. 여승이 시장기를 느끼며 달달한 참외를 먹는 장면은 나에게는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옛 기억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울산 사시죠?” 나는 뛰는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네? 아, 네.” 아침 운동할 때마다 마주치던 남자였다. 한눈에 봐도 부리부리한 눈, 큰 키, 딱 벌어진 어깨가 운동을 잘 하고 좋아할 것 같았다. 남자는 자기도 몇 년간 울산에서 살았고 대기업을 그만 두고 여기 고시원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은 도시로 나갈 시간이 없으니 내가 울산 집에 다니러 갈 때 <샘터> 책을 좀 사다 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고맙다며 주먹만 한 참외 하나를 건넸다. 노란 참외는 햇살을 받으며 진작 달달함을 흩날리고 있었다.

신불산과 천황산 사이 배내골 선리마을에 원동초등학교 이천분교가 있다. 내 첫 발령지이다. 당시만 해도 학교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 자갈길에다 산을 넘어야 했다. 작은 외삼촌이 학교 옆 관사로 짐을 옮겨줬다. 이유는 신형 승용차를 막 구입했는데 힘이 좋아 오르막길을 잘 오를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차는 연신 헛바퀴 질을 해대고 자욱한 먼지를 날렸다.

학교와 마을은 골짝이 깊어 해가 빨리 떨어졌고 해가 지면 온 동네는 암흑천지로 변했다. 전교생은 38명. 사람이 귀한 이곳에서 이방인의 출현은 마을사람들의 공통 관심사였다. 젊은 여교사의 출현은 말할 나위 없었다. 그래서 고시원까지 내 이야기가 바람에 실렸나 보다. 바람은 이장댁 참외밭 달콤한 향을 나와 그 남자의 가슴에도 실어 날랐다.

참외는 우리 민족의 과일인것 같다. 민족과일이라는 것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거짓이 아닌 참된 ‘외’이기 때문에 참외다. 국어사전을 보면 ‘외’는 ‘오이’의 준말이다. 한자로 참외는 진짜라는 뜻에서 진과(眞瓜)라고 한다. 반면 우리가 오이라고 부르는 채소는 토종 진짜 오이가 아니라 서역 오랑캐 땅에서 전해졌다는 뜻으로 호과(胡瓜)다.

경북농업기술원에 따르면 과채류 100g당 엽산 함량은 참외 132.4㎍, 딸기 127.3㎍, 토마토 51.9㎍, 키위49.4㎍ 순으로 나타났다. 임신부에게 엽산이 부족하면 태아의 신경계가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임신부의 하루 엽산 평균필요량은 520㎍DFE(식이엽산당량). 임신기간 매일 400g짜리 참외 한 개만 먹으면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참외에 든 엽산을 제대로 섭취하려면 씨가 붙은 부분까지 다 먹는 게 좋다. 과육보다 무려 5배나 많이 들어 있다.

▲ 박미애 울산공업고등학교 영양교사

참외는 짠 음식을 많이 먹는 한국인에게 추천할 만하다. 체내 나트륨을 배출하는 칼륨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심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콩팥이 좋지 않은 사람이다. 몸속에서 칼륨이 배설되지 못하면 혈청칼륨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근육의 힘이 약해질 뿐만 아니라 심장에 부정맥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남편에게 물었다. 왜 그때 <샘터> 책을 사 달라고 했는지. “사랑의 샘물을 퍼 올리려고.” 우리는 참외하면 ‘금싸라기’ 품종을 떠 올린다. 남편의 금싸라기 같은 대답에 나는 참외를 집어 물며 하릴없이 배시시 웃는다.

박미애 울산공업고등학교 영양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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