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 - 손유태 作.

나무가 하늘에 가지를 박고 땅에 뿌리를 박아 꽃과 열매를 만들고 둘 사이의 마주잡은 손이 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듯 내가 걸어 들어가는 숲의 풍경은 은둔이나 어두움과는 거리가 멀다.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나무나 숲은 많지만 세상에 이보다 치열한 순응은 없다.

까치 소리가 하도 요란하여 창밖을 내다보았다. 집 뒤에 서있는 커다란 회화나무에서 까치 두 마리가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겨 다니면서 목청껏 노래하고 있었다. 칠백 년이란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듯 나무둥치는 온통 검은 빛이었지만 이웃집 옥상까지 제멋대로 뻗어나간 나뭇가지에는 새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올라간 우듬지에는 까치집이 정겹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속이 궁금하여 들여다보고 싶지만 얼기설기 지은 까치집 모양만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여름이 되면 무성한 잎들은 넓고도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지만 ‘보호수’로 울타리와 철문으로 잠겨있어서 그 밑으로 다가 설 수가 없었다.

어릴 적 초등학교 교정에 서 있던
플라타너스 나무
어머니 품 같은 넉넉한 큰 나무에
기대보기도 하고 시원한 그늘 속에
잠시나마 머물다 가곤 한다

회화나무의 푸른 그늘은, 큰 나무 아래 서면 언제나 그랬듯 어릴 적 초등학교 교정에 늠름하게 서 있던 플라타너스 나무로 상념을 옮긴다. 그 플라타너스의 짙은 그늘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쉬는 시간 종이 땡땡땡 울리면 친구들은 마치 플라타너스의 부름이라도 받은 듯 앞 다투어 그곳으로 달려가곤 했다. 손을 잡고 아름드리 고목 둘레를 재기도 하고 하늘 높이 올라간 나뭇가지들을 올려다보기도 하며 꿈과 끼를 키워나갔다. 고무줄넘기나 공기놀이도 하고 돌차기도 했다. 플라타너스 그늘은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전쟁이 났다. 우리 가족은 경남 밀양으로 피난을 갔고 피난민 수용소에서 생활했다.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집과 학교는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학교를 찾아가 주위를 둘러보니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보리쌀을 씻던 정겨웠던 우물가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스산하기 짝이 없는 찬바람만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집에 돌아왔음을 일깨워 주었던 것은 학교 운동장 옆에 노랗게 물든 채 서 있던 그 플라타너스 나무였다. 떨어진 낙엽을 주워 책갈피에 고이 넣어두는 것으로 나 혼자만의 귀향 기념식을 치렀다. 플라타너스마저 사라지고 없어져 버렸더라면 집으로 되돌아온 안정감을 회복하기 힘들었으리라. 아마도 그 때문일 게다. 길을 가다가도 플라타너스만 보면 어릴 적 교정의 그 플라타너스가 생각나서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어머니 품 같은 넉넉한 큰 나무에 기대보기도 하고 너풀너풀 커다란 이파리가 만드는 시원한 그늘 속에 잠시나마 머물다 가곤 한다.

플라타너스 그늘에선 언제나 헨델의 희극적 오페라 크세르세스(Xerxes)에 나오는 ‘라르고’가 들린다. 어느 날, 플라타너스에 얽힌 추억을 얘기했을 때 기악을 전공한 딸이 ‘라르고’를 들려주었다. 라르고의 원래 곡명은 ‘옴브라 마이 푸(Ombra mai fu,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이다. 오페라 1막이 시작되자마자 플라타너스 그늘에서 쉬고 있던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세스가 ‘사랑스런 푸른 나무 그늘이 이렇게 감미로웠던 적은 없다’며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를 칭찬하는 아리아를 부른다. 땡볕이 내리 쬐는 한 여름 커다란 플라타너스 아파리가 나른한 바람을 일으키듯 느리고 감미로운 선율이다.

플라타너스 그늘에서 라르고의 선율이 들리면 한 여학생이 떠오른다. 청소년 성폭력예방교육을 하고 다닐 때다. 모 여고 1학년 대상으로 강의를 끝내고 나오는데 한 여학생이 나를 불렀다. 여학생의 얼굴을 보니 순간적으로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교문 입구에 큰 플라타너스가 보였다. 넉넉한 엄마의 품에 안긴 듯 아늑한 나무 그늘 아래로 그 여학생과 함께 걸어갔다.

계속 말을 못하고 울고만 있던 그 여학생은 겨우 말문을 열었다. 어제 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약간 어둑한 곳을 지나는데 갑자기 20대 청년이 흉기를 목에 들이대더라는 것이다. 따라오라는 말에 겁에 질린 상태로 따라갔다. 어두운 공터였다. 입을 틀어막기 때문에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고 주위에는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께도 말을 못하고 밤새껏 울었단다. “엄마가 있었더라면 버스정류소까지 데리러 나왔을 것이고 또 사실을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혼한 엄마가 원망스럽고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라며 흐느꼈다. 병원과 수사기관을 거치면서 계속적인 심리 상담을 하였다. 다행히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되었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도 하였다. 그 여학생도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날의 큰 플라타너스 그늘을 자주 떠올리곤 한단다.

지금 내 머리에는 하얀 꽃이 시들어가지만 몇 백 년의 세월을 지난 초등학교 교정의 플라타너스는 여전히 제 자리에 서서 새 싹이 돋고 있을 것이다. 싹이 트고 초록의 잎이 무성해지면 누구나 그 그늘 아래서 쉴 수 있을 것이고 인생의 무지개 꿈을 꾸고 또 펼쳐 가리라.

▲ 성주향씨

■ 성주향씨는
·수필문학 등단
·한국예총 울산시 공로상 수 상(제29회 울산예술제)
·수필집 <남편이 준 숙제> 출간
·사례집 <물어봐도 돼요-가정 폭력·성폭력 100사례> 출간
·성주향부부상담소 소장

 

▲ 손유태씨

■ 손유태씨는
·1995년 1회 개인전(한마음 갤러리 초대)
·2011년 3회 개인전 (서울 안 나비니갤러리 초대)
·2014년 5회 개인전 (서울 가 나인사아트센터)
·2015년 6회 개인전(울산문화예술회관)
·한국미협, 울산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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