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74세…인종차별에 저항, 올림픽 금메달 강에 던지기도

 

헤비급 타이틀 19차례 방어…1960~1970년대 풍미한 최고의 복서
은퇴후 1984년 파킨슨병 진단받고 32년간 투병

인종차별에 저항한 복서, 로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영원한 헤비급 챔피언.

20세기 최고의 복서로 평가받은 미국의 무하마드 알리가 3일(현지시간) 미국의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7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의 대변인 밥 거닐은 이날 성명을 통해 “알리가 32년 동안 파킨슨병을 앓은 끝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알리는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한 의료기관에서 생명보조 장치에 의존해 투병해왔고 가족들은 그의 임종을 지켰다.

그는 은퇴 3년 만인 198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으며 최근에는 호흡기 치료를 받아왔다.

알리는 2014년 12월에는 폐렴으로, 지난해 1월에는 요로 감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는 등 수년간 수차례 병원을 찾았다.

알리는 올해 4월 9일 피닉스에서 열린 파킨슨병 치료 기금 모금 행사에 참석했으나 많이 쇠약해진 모습이었다.

1942년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태어난 알리는 본명이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였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한 곳에서 태어난 알리는 가난과 무시 속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12세 때 아마추어 복서 생활을 시작한 알리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맬컴 엑스를 만나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바꾸고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이어 프로로 전향해 3차례에 걸쳐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고 통산 19차례 방어에 성공하면서 1960~1970년대를 풍미했다.

1967년에는 베트남전쟁 참전 통고를 받고도 양심적 병역 거부해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프로복서 자격마저 상실했다.

이후 3년의 공백을 딛고 1970년 링에 복귀했고 1974년 조지 포먼을 8회 KO로 물리치고 세계 챔피언에 복귀했다.

프로 통산 전적은 56승(37KO) 5패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는 그가 1964년 2월 25일 마이애미비치 컨벤션 홀에서 WBA/WBC통합 챔피언인 소니 리스턴에게 도전해 승리하기 전 인터뷰에서 한 말로, 복싱의 전설이 된 그를 늘 따라다닌 수식어였다.

그는 화려했던 복서 생활은 물론이고 인종차별과 싸운 복서로서도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식당에서 인종차별을 당하자 메달을 강에 던져버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남자 농구 결승전 하프타임 때 그에게 다시 금메달을 수여했다.

알리는 당시 파킨슨병 투병 중에도 올림픽 개막식에 성화 점화자로 나서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7남 2녀를 둔 알리는 1986년 재혼한 4번째 부인 로니와 함께 최근 피닉스 인근에서 특별한 외부활동 없이 조용히 나날을 보내왔다.

알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프로농구(NBA)의 스타 르브론 제임스는 “알리는 링 안에서보다 링 밖에서 더 위대했던 영웅”이라며 그가 아프로-아메리칸에게 끼친 영향력을 크게 평가했다.

전설적인 복싱 프로모터 돈 킹은 CNN에 출연해 “알리는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전에는 패배라는 단어가 없었다”며 “그의 정신은 영원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미들급, 슈퍼미들급, 헤비급을 차례로 석권했던 로이 존스 주니어는 트위터에 “무척 슬퍼지만 위대한 복서가 좋은 곳에서 편하게 쉬게 돼 감사한다”는 글을 올리는 등 유명 인사들의 추모 메시지가 잇따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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