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영축산 망해사

▲ 망해사의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등산로로 향할 수 있다. 계단을 오르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망종(芒種·6월5일)이 지났다. 24절기 중 9번째 절기를 보낸 들녘은 보리를 베고 모를 심을 시기다. 이미 대부분의 논은 모내기를 마쳤다. 옮겨 심은 모가 뿌리를 내리는 일만 남았다.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한 계절, 여름이 무르익고 있다.

동해용왕 설화 간직한 망해사
1957년 중건 후 지금 모습 갖춰
산길 초입엔 금계국 등 들꽃 향연
울창한 송림이 만든 그늘 지나면
절 특유의 향냄새 바람에 그윽히

망해사(望海寺)가 위치한 영축산(靈鷲山)을 찾았다. 이 사찰은 <삼국유사>에 창건설화가 기록돼 있다. 신라 제49대 헌강왕이 세운 사찰로 처용설화와도 관련이 깊다.

헌강왕 때는 서울(경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이 연이어져 있었고 초가는 하나도 없었으며 풍악과 노랫소리는 길거리에 가득하였고 바람과 비는 철마다 순조로워 나라는 퍽 태평했다고 전해진다.

헌강왕이 울산 세죽으로 나들이를 왔다가 낮에 물가에서 쉬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져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동해 용왕의 소행이라는 일관의 조언에 따라 왕은 측근들에게 명하여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세우게 하자 구름과 안개가 걷혀 이 땅의 이름을 개운포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어 왕이 서울에 돌아가 영축산 경승지를 선정, 용을 위해 절을 세우고 그 이름을 망해사로 정했다고 한다.

▲ 문수상 정상으로 향하는 길. 바위와 나무들로 만들어진 액자 속 절경이 펼쳐진다.

망해사는 이런 연기가 있는 고찰이었다. 언제 어떻게 폐사가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 당시로 추정할 뿐이다. 망해사는 옛터만 전해오던 것을 1957년 전(前) 주지 김영암 화상이 중건한 뒤 황량하게 절터에 버려졌던 유적 등을 찾아내 정리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기틀을 잡았다.

현재 망해사에는 보물 제173호로 지정된 2기의 승탑(부도)이 있다. 울주망해사지승탑(蔚州望海寺址僧塔)이다. 법당 북쪽에 동·서로 자리하고 있는데, 동쪽 승탑은 파손돼 있던 것을 1960년 11월 복원한 것이다. 1960년 이후 발견된 각종 기와, 그릇조각 등도 보관돼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기왓장 가운데는 ‘가정(嘉靖) 23년 갑진’(조선 중종39년·1544년)이라는 글이 새겨진 기와도 발견돼 이때에 중건 불사가 이뤄졌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가정(嘉靖)은 명나라 세종 때의 연호로 1522년부터 1566년까지 사용됐다. 이 기와에 새겨진 내용은 망해사의 창건후 역사를 알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기록이기도 하다.

율리 시내버스 공영차고지에서 내려 샛길로 들어가니 아담한 마을이 나온다. 동네 개들이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듯 짖어대고, 마을 옆 무덤가는 풀이 무성하다. 저 풀들도 제 이름이 있을 텐데 왜 풀이나 잡초로 불릴까. 수풀 사이로 자리 잡은 이름 모를 누구의 손 떼도 타지 않아 자연스럽다. 노란색 금계국, 보라색 하고초(夏枯草)가 초록과 어울려 향연을 펼친다. 초입부터 생동감이 넘치고 흥으로 가득 찬다.

▲ ‘영축산 망해사’라고 새겨진 비석이 가장 먼저 산객들을 맞이한다.

마을을 가로질러 5분정도 걸었을까. 곧게 뻗은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산사를 찾은 날에는 폭염주의보가 떨어졌다. 몸이 늘어지거나 찝찝하기 보다 영축산의 울창한 소나무 숲이 만들어낸 그늘터널에 차라리 개운하다. 아스팔트 포장길이 아니었다면 완벽한 산림욕을 즐길 것만 같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했던가. 망해사로 가는 길이 황톳길이었다면 또 다른 불만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아! 보리밭이다. 비탈을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리밭이 눈에 띄었다. 오두막 한 채 정도 지을만한 공간에서 내품는 푸른 황금빛 생명. 낟알 겉껍질에 붙은 까끄라기가 빳빳하게 금방이라도 보리 낟알이 터져 나올 듯하다. 마을 아낙은 햇보리로 지은 보리밥을 짓고 싶을 게다. 15~20분 정도 걸었을까. 절 특유의 향냄새가 산바람을 타고 내려와 코끝에 닿는다. 망해사를 가리키는 안내표석에 닿기도 전에 절밥 먹는 두 마리의 개가 반겨준다.

망해사는 적막에 쌓여 있다. 헛기침을 하기도 눈치가 보인다. 감로차(甘露茶)라 이름 붙인 약수가 흘러내리는 경쾌한 음과 산객이 땅바닥을 내딛는 소리뿐이다. 정원을 산책하듯 산사 마당을 거닐어 본다.

▲ 망해사 대웅전은 절의 가장 중심부에서 가파른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다.

허리 높이보다 낮은 동자 석불과도 인사를 나눠본다. 어쩌면 저렇게 순박한 눈망울을 가졌을까. 동자 석불이 합장한 손에 올려진 500원짜리 동전 한닢. 누군가의 염원처럼 밝게 반짝였다. 혹시 내 소원도 들어주지 않을까? 괜스레 동전 하나를 끄집어내 기도를 해본다. 산사는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다.

발걸음을 옮겼다. 양지바른 한켠에 자리 잡은 탑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보물로 지정됐다는 승탑이다. 천년세월 풍파를 견디며 만들어진 생채기가 안쓰럽다. 민들레홀씨가 흩날리는 산사의 승탑이 보물이라 그럴까 눈길이 더 간다.

대웅전 뒤 지장보살과 석가여래상은 우두커니 서있다. 승탑을 뒤로한 채 돌계단을 올랐다. 절이 이름값을 하나보다.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비경이 펼쳐진다. 문수축구장이 머리끝을 희끗희끗 보인다. 청명한 날이었다면 동해바다가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다.

▲ 영축산 등산로 입구에서는 ‘망해사지 승탑’을 만날 수 있다.

너무 오래 머무른 것 같아 서둘러 걸음을 옮겨 절 오른쪽으로 난 돌계단을 올랐다. 깊은 산 속으로 접어든다. 고요, 아니 침묵이란 말이 더 맞겠다. 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라 덩굴 속을 바라보니 산 고양이가 먹이를 노리고 있다. 상대는 귀여운 다람쥐. 강적이다. 둘의 추격전으로 이내 적막감은 사라졌다.

정적이 깨지면서 서서히 자연의 소리들이 들려온다. “딱 딱 딱 딱…” 딱따구리가 집을 짓고 있다. 마치 복잡다단한 머리와 마음을 환기시켜주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같다. 산새들의 지저귐과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는 자연의 협연처럼 보스락거리는 소리가 아름답다. 음악을 틀고서 산을 오르는 산객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지.

자신을 봐달라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녀석들도 있다. 시선 한번 주지 않고 지나칠 뻔했다. 톡 누르면 금세 터질 것처럼 알알이 과즙이 꽉 찬 산딸기가 실하다. 그늘진 수풀에는 뱀딸기도 함께한다. 뱀이 먹는 것이라 독이 있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글·사진=박해철 수습기자 kshc@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