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개복숭아를 따면서

▲ 궁중 월과채와 씨겨자소스

현충일을 하루 앞둔 지난 5일은 망종(芒種)이었다. 망종은 24절기 중 9번째 절기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듯이 망종은 벼, 보리 등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 가장 좋은 날이라 한다.

까끄라기 털이 있는 복숭아를 따러 경주로 갔다. 개복숭아 나무가 있는 산비탈이나 산기슭을 올라 따긴 하지만 잔소리를 자주 들어 왔다. 복숭아털이 온몸에 붙어 보리타작을 한듯 간지럽고 나뭇가지에 긁혀 손을 다쳐왔기 때문이었다. 쥐방울만큼이나 알이 작아 열매를 따려면 나뭇가지를 다람쥐처럼 기어올라 하나씩 땄던 증표라고나 할까.

올해는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지난해에 수확해 효소로 만든 것은 기쁜 마음으로 직원들에게 작은 병에 담아 선물했다. 이번에 따서 만든 효소가 익어 선물할 때는 직원들에게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시절이 그리 흘러가니 난들 버텨낼 재간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괜히 나이 먹은 게 죄인가 싶어 서러운 생각마저 든다.

메밀가루로 얇게 부친 전과
소고기와 당근·버섯 등 야채를
채썬 뒤 보기좋게 돌려담아
씨겨자소스에 버무려 먹는
궁중 월과채는 어울림의 요리

 

▲ 이창우 호텔현대울산 총주방장

요리사들은 가스에 노출된 상태에서 일을 해야 하고 고기를 구우면서 연기를 늘 마신다. 그래서 기관지가 안 좋은 직원도 있고, 서서 일하는 직업이라 관절이 좋지 않는 직원도 많다. 개복숭아 효소가 관절이나 기관지에 좋다고 해서 해마다 효소도 담고, 술도 담가 직원들에게 주곤 했다. 복숭아가 익어 효소가 되기까지 여러 번 작업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힘들 때 웃음 주는 사람이 주위에 손만 뻗으면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살아갈까 싶다.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어도 네가 있어 오늘도 웃는다. 때론 힘에 겹고 슬픔에 눈물 흘리고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기도 하지만 한걸음 물러서 세상을 바라봐 좋은 일도 많고’라는 컬투의 ‘세상 참 맛있다’ 노랫말처럼. 한걸음 물러서서 세상을 보기보다 눈앞에 현실에 아옹다옹한다. 서로를 위로하고 칭찬하는 것에 익숙지 않고 남의 아픔에 무관심하게 대한다. 그렇게 서서히 웃음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막상 주어진 현실에 부딪치면 내 마음 같질 않다. 세상을 맛없는 요리를 하며 사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생각 차이는 정말 얇은 종이 한 장의 두께보다 얇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개북숭아처럼 푸른 알맹이의 맛은 떫고 아리지만 시간을 두고 발효를 해야 맛을 내는 진리를 알면서도 모른 척 살아가려니 세상살이가 힘든 것 같다.

가까이 있는 친구도 잘 사귀면 꿀맛이고 잘못 사귀면 쓴맛이 된다. 사랑도 잘하면 달콤한 맛이 나지만 잘못하면 매운 맛이 나고, 인간관계도 잘 하면 단맛이 나지만 잘못 하면 짠맛이 난다. 음식도 그와 같아서 모든 음식이 단맛이 나서도 안 된다. 달콤한 맛이 맛의 전부가 아니듯이 음식 재료에 따라 때론 쓴맛도 매운맛도 있다. 세상은 돌아가는 것이고, 아직은 떫고 아린 맛을 가진 젊은이들이 요리사로서 잘 익어가도록 옆에서 한걸음 물러서 지켜봐 줄 우리도 필요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위로해 본다.

◇궁중 월과채와 씨겨자소스

△재료

소고기채 100g, 당근채 50g, 애호박 50g, 표버섯채 50g, 메밀 밀쌈채 3장, 겨자소스
<씨겨자소스> 홀 그레인 디죵 머스터드 20g, 양겨자 40g, 올리브오일 20㎖, 꿀 20g, 레몬즙 10g, 소금, 후추 조금

△만드는 법

1. 소고기와 표고버섯은 채 썰어 마늘, 간장에 절인 다음 살짝 볶아둔다.
2. 나머지 야채도 채 썰어 소금 간을 하고 살짝 볶는다.
3. 메밀은 계란 1개, 메밀가루 100g, 부침가루 50g, 소금을 넣고 얇게 부친 다음 채 썬다.
4. 모든 재료를 섞어 겨자소스에 버무려 드시면 된다.

이창우 호텔현대울산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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