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대물림으로 부의 편중 갈수록 심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사회갈등 심각
선진 자본주의국가 선례 본받았으면

▲ 박호근 언론인·전 연합인포맥스 사장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원래 신성한 것이었다. 초기 로마 제국시절 귀족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높은 정치적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감을 실천한 데서 유래된 말이다. 재산의 기부와 헌납은 물론 투철한 도덕의식과 공공정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자발적이고 솔선수범이었으며 귀족들 사이에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의무인 동시에 명예였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귀족들이 전장에 나가 목숨을 잃는 사례도 많았다. 목숨까지 내 건 오블리주의 실천에 귀족들의 노블레스는 굳건히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중세시대 이후 유럽사회의 귀족들에게 전통으로 이어졌다. 서구에서 싹 튼 초기 자본주의 이념에도 녹아들었다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미국의 페이스북 창업자 겸 CEO인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중국인 부인 프리실라 챈이 작년 말 페이스북 보유지분 450억 달러(약 52조원)의 99%를 기부키로 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저크버그에 앞서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MS 주식 434억 달러의 사회 환원 의사를 밝힌 이후 2010년 4월까지 368억5000만달러를 기부했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도 지난 2006년 자기 재산의 85%인 375억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기부 재산의 비율을 계속 높이고 있다.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은 뜻을 함께하는 52명과 함께 지난 2010년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란 기부클럽을 만들고 전 세계 부호들을 대상으로 재산의 사회환원 운동을 시작했다. 자기 재산의 절반 이상을 생전 또는 사후에 기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 서명하는 이 운동 참여자는 현재 134명에 이르고 기부금만 5000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빌 게이츠는 자신의 재산 중 95%를, 워렌 버핏은 99%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빌 게이츠는 그러나 자신의 세 자녀에 대한 유산은 각각 1000만달러를 넘지 않도록 하겠다고 못 박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 재벌들은 부의 상속 문제로 바람 잘 날 없다. 최근만 해도 신격호 롯데그룹회장의 경영권 계승 과정에서 2세들간 다툼은 결국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에 검찰의 칼날’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기사가 언론을 도배질하고 있다. 편법 증여나 상속 시비에다 형제간 상속 분쟁이 끊이질 않는다. 삼성, 현대, 두산, 금호 효성 등의 재벌그룹이 상속 과정에서의 형제간 분쟁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 SK, CJ, 한화그룹 등의 재벌 총수도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적이 있다.

창업주의 창업정신과 꿈은 뒷전이고 창업주가 일구어 놓은 부를 되물림 받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재벌가의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천민 자본주의의 추한 모습들이 고스란히 국민들의 뇌리에 박혀 있다. 상속이 아니라 기부를 통한 부의 사회환원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유럽 대부호들의 모습과는 판이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길지 않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고속성장을 일궈낸 배경에 재벌들의 역할을 과소평가할 순 없다. 그러나 2, 3, 4세대로 재벌의 부가 승계되는 과정에서 재벌의 부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나면서 부의 편중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지만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소유와 경영의 철저한 분리나 사회보장제도의 확대, 대자본가들의 통 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문화 확산 등으로 이를 보완하고 있다.

우리의 자본주의가 더욱 성숙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재벌들에 대한 역할과 기능에 대한 대협의가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박호근 언론인·전 연합인포맥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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