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왕수 사회문화팀

과연 한국에서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망사고를 낸 기업에 수십, 수백억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을까. 책임을 물어 CEO를 기소할 수 있을까. 아마도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현실화되긴 어려울 듯 싶다.

최근 선진 산업안전문화를 취재하기 위해 방문한 영국은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에 무한대로 벌금을 부과하고 있었다. 기업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보는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에 의해서다. 영국은 일명 기업살인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도 가스관 폭발사고로 일가족 4명이 사망하는 사고를 낸 한 기업에 1500만파운드(한화 260억원)의 벌금을 부과할 정도로 강력한 처벌정책을 유지해왔다. 경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업의 역할에 비례해 근로자의 안전도 중요시하고 있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안전과 관련한 비용을 지출로 보는 사업장과 투자로 보는 사업장의 안전수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금전적인 이윤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안전을 소홀히 할 수 있는 반면 근로자가 다치지 않고 일을 하는 것 역시 경영성과로 보는 기업은 안전확보에 적극 투자할 수 있다. 영국은 CEO들이 안전에 관심을 가져야 인명 피해를 없앨 수 있다고 믿는다. 기업살인법 역시 기업을 죽이는 법이 아니라 근로자를 살리는 법으로 인식한다.

안전비용을 투입한다고 해서 회사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같은 업종 기업이 영국과 한국에 각각 위치해있다고 치자. 영국 기업은 한국에 비해 인건비가 비싸고 훨씬 많은 비용을 안전에 투입해야 한다. 같은 물건을 만든다고 가정했을 때 영국 기업의 경쟁력이 한국에 뒤쳐져야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은 더이상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IMF(국제통화기금)는 GDP 기준으로 세계 11위인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산업안전 역시 선진국 수준으로 발돋움 해야 한다. 어떤 산업현장에서도 산재 사망사고를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한국의 모든 CEO가 자발적으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게 무엇보다 좋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강제적이긴 하나 강력한 처벌이 뒤따르는 기업살인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왕수 사회문화팀 ws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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