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스스로 진로 택해 개척할 수 있어야
부모 욕심으로 미래 강요해선 안돼

▲ 유성호 풍생고등학교 교장

여러 해 전 시골의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대학 입시 준비 때문에 학교와 학원에 빠질 수 없다며 장례식에 불참시키는 학부모를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명문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을 전전하며 입시 공부와 내신 성적에 목을 매는 대한민국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언제부턴가 친구는 반드시 이겨야 할 경쟁자라는 의미가 되고, 나눔과 배려의 소중한 가치는 교과서에서나 배우는 용어가 되어버린 듯하다.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들은 자녀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보다는 자녀중심적인 삶을 살아간다. 오로지 자식의 뒷바라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치열한 경쟁을 감내하다 보니 부모와 아이 모두 만성적인 불안감과 상대적 열등감으로 힘들어 한다. 특히 명문 대학과 인기 학과 진학을 위한 대학입시의 광풍은 이러한 희생과 경쟁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일부 학부모들의 민원에 밤낮없이 시달리고 있다. 이들 민원의 상당수는 아이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과 왜곡된 사랑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왜 우리 아이에게 관심을 더 주지 않느냐?’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교 행사를 왜 하느냐?’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를 왜 깨워서 야단을 치느냐?’ ‘핸드폰은 왜 걷느냐?’ 등 학교의 정당한 교육활동과 학생지도에 대해 시시콜콜 불만을 제기하는 학부모들이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심지어 학교 폭력의 가해자 학부모가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경우까지 있다. 몇몇 학부모는 학교 선생님들의 조력자가 아니라 감시자가 되어 상습적으로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

일찍이 고통스러운 역사의 질곡(桎梏)과 궁핍한 가정 환경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것이 대한민국 부모들의 지독한 교육열이었다. 가난한 부모들은 못 배운 한을 자식에게만은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자녀 교육에 헌신했다. 이러한 부모의 희생과 헌신적인 노력은 결국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여 개인적 성취와 함께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첨단 과학기술시대로의 급변에 따라 이제는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전 시대의 가치관에 얽매인 부모들이 적지 않다. 자녀의 적성이나 재능보다는 시류(時流)에 따라 부모가 원하는 특정 직업인이 되기를 여전히 희망한다. 몇 년 전부터 각종 설문조사에서 중고등학생들이 꼽는 장래희망 1순위가 교사와 공무원이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부터는 단지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이유로 부모들이 자식의 장래 희망으로 교사와 공무원을 강력하게 권유하고, 또 이를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기는 우리 청소년들을 보면서 생명력을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는 듯해서 씁쓸한 기분을 금할 수 없다.

이제는 우리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미래를 살아야 할 우리 아이들에게 궁핍한 시대의 개발 논리로 획일적인 진로 선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평균 수명이 90세가 넘는 시대는 평생 3~4개의 직업이 필요한 사회가 될 것이다. 제발 부모의 욕심과 맹목적인 애정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강요하며 소중한 현재를 낭비하지 말자. 현재가 없는 미래는 의미가 없다. 우리 아이들이 주체성을 갖고 자신의 꿈과 적성에 맞는 다양한 진로를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해 미래 사회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 시대 부모의 진정한 역할이다. 맹목적인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유성호 풍생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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