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산태극수태극 영남알프스 18경-(18)영남알프스 4대사찰 산악길

▲ 밀양 표충사와 청도 운문사를 잇는 일흔일곱 고갯길 도래재. 가신님이 다시 돌아온다고 하여 회령(回嶺)이라고 부른다.

영남알프스 산악길 따라 명산명찰 찾아 타박타박

명산명찰(名山名刹)은 큰 산 아래에 묻혀있었다. 어림잡아 100㎞에 달하는 통도사, 석남사, 운문사, 표충사 4대 사찰 둘레길은 소쿠리 형태로 둥글다. 이 길은 살림살이 포시러운 보살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도는 순례길과는 다르다. 하늘을 찌르는 태산을 죽기 살기로 걸어 올라야만 도달할 수 있는 산악 순례길이다. 통도사에서 시작하여 통도사로 회항(回航)하는, 영남알프스가 숨긴 산악 순례길을 떠났다.

 

가장 먼저 오른 도보 길은 속칭 중건네길이었다. 통도사를 출발해 영축산과 신불산 산자락을 끼고 도는 비탈길이다. 백주대낮에 대로를 나설 수 없었던 통도사 스님들이 석남사로 향하던 길로 전해온다. 그 다음엔 석남사에서 가지산 쌀바위를 올라 운문사를 가로지르는 구름재이다. 4대 사찰 산악길 중에서 가장 힘든 코스이다. 연이어지는 길은 운문사와 표충사를 연결하는 일흔일곱고갯길 도래재(回領)로, 가신님이 돌아온다는 고갯길이다. 마지막으로 표충사에서 통도사로 연결된 도태정(道太井)은 깨우침을 얻는 길이다. 이 길들은 산 넘고 물 건너 산중 가람을 찾아 나선 수행자의 통로이며, 사부대중들이 구슬땀 흘리며 걷던 삶의 길이기도 하다.

영남알프스 4대 사찰 길을 찾아 떠나려면 산에 헌신할 줄 아는 마음 씀씀이가 있어야 한다. 또한 걷는 데 이력이 붙은 사람이어야지, 포시러운 보살들이 나섰다간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 특히 호랑이 아가리 같은 험로가 하나둘 아닐뿐더러 층층능선에는 칼을 심어둔 도산검수가 기다린다.

 

 

깨닫음 얻는 수행자의 통로 걸으면서
마음은 해탈·몸은 천상 누릴 수 있어
비구니 사찰 운문사엔 호랑이 소굴도
일흔일곱 고갯길 돌면 표충사 나타나
야경삼매에 통도사 밤길을 걸어 보아라

영축산에서 시살등까지 장쾌하게 뻗어 내린 영축지맥 아래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사찰인 통도사가 있다. 높은 산일수록 대찰이 존재하고 그 가람의 창건설화와 어우러지면서 산의 이름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태백산에서 내려오던 낙동정맥은 가지산에서부터 튀기 시작하여 영축지맥에 이르러서는 호랑이가 먹이에게 달려들듯이 호각지세를 이룬다.

영축산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정상에 올라서서 보면 독수리가 날개를 편 형상이고, 발치에서 올려다보면 사나운 개가 앞다리를 펴고 앉아있는 형상, 양산 석계 방향에서 보면 코끼리 형태로 보인다. 좀 더 멀찍이 떨어진 고을에서 보면 간월산, 신불산, 영취산 삼형제봉은 마치 부처님이 하늘을 향해 누운 형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영축산 아래에 있는 통도사가 번창한다고 전해온다.

만물이 잠든 삼매에 통도사 뒷산을 걸어 올랐다. 나뭇가지에 가려진 보름달이 보일듯말듯 따라온다. 저게 뭘까? 돌아보면 꼬리를 문 희미한 안개다. 쉬고 싶어도 짙은 안개와 함께 가려는 발걸음이 보조를 맞춘다. 어느 정도 올라가면 구름바다에 빠진 안개는 기압에 눌려 못 따라오고, 그때쯤 배낭을 진 채로 쉰다. 아무도 없는 산에 홀로인 적막함. 아, 삼라만상의 밤 운무여. 마음은 해탈이요, 몸을 천상에 있다.

▲ 영남알프스 4대사찰 산악길. 김성동(울산사생회 회장)

석남사 구름은 머물지 않는다

다음 탐방은 가지산 구름재이다. 구름재는 청도 운문고개를 돌지 않고 석남사에서 운문사로 곧장 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작은 구름재는 청도 운문재와 밀양 석남재 방향, 큰 구름재는 가지산 쌀바위로 나간다. 쌀바위에서 가지산 북릉에 있는 학심이로 내려서는 순간 확 달라지는 한기가 느껴진다. 행여 당신이 이 길을 가고 싶다면 가을에 나서시라. 쌀바위를 안고 학심이골에 접어들면 불난 떡집 같은 단풍에 빠져 자칫 오줌을 질금 쌀 줄 모른다. 20~30m 아래로 수직 낙하하는 웅장한 학소대(鶴巢臺) 폭포도 일대 장관이다. 이어지는 푸른 소(沼)와 돌이끼 바위군상도 볼만하다.

학심이골 아래에는 큰물이 지면 맹수조차 건너지 못하는 큰 거랑이 있다. 이 거랑을 따라 가면 사리암, 운문사가 나오고, 시오리밖엔 황정자마을과 조선 솥을 만들던 솥계마을이 잇달아 나온다. 한편, 청도 운문사 입구에 도열한 솔밭길의 과거사를 알면 서글퍼진다. 찬바람에 춤추는 노송 아랫도리에는 하트모양의 상흔이 남아 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에 송유(일명 소까치기름)를 뺀 아픈 과거이다.

영남알프스 4대 사찰은 한국전쟁의 아픔도 여럿 간직하고 있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운문사 담벼락에 남아있었던 총탄 흔적은 사라지고 없다. 영남알프스 일대를 장악한 신불산 빨치산들이 4대 사찰을 소각하려다가 거사 직전에 그친 일화도 있다. 6·25전쟁 당시 석남사 승려였던 최기윤(1925년생)씨는 “사흘 멀다하고 내려온 빨치산 때문에 절도 털렸어요. 종이가 그리운지 그들은 종이나 먹 같은 글 쓸 것을 찾았다”고 했다. 유난히 소나무 향이 좋은 운문산 주변엔 전국에서 모여든 산판꾼들로 번다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의 문수선원은 가지산과 운문산 일대에서 벌목한 나무를 집목하던 산판장이었다.

▲ 양산 통도사와 상북 석남사를 잇는 중건네길에서 본 신불산과 영축산 전경. 울산~함양 고속국도는 유서 깊은 압유사(鴨遊寺) 추정 절터와 깊으네(深川)를 관통한다.

호랑이 소굴이었던 평지가람, 청도 운문사

비구니사찰인 운문사는 큰 산에 가려져 오전 9시에 해가 떠서 오후 4시면 지는 평지 가람이다. 주변 산들의 지명을 보면 예로부터 호랑이가 많이 설쳤던 모양이다. 운문산에서 지룡산까지 호박처럼 둥근 운문지맥을 통틀어 호거산(虎去山)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호랑이 소굴이라는 뜻이다.

운문사와 가지산을 가르는 아랫재는 하늘이 막힌 골짝이다. 경북 청도 운문면과 경남 밀양 산내면을 잇는 유일한 통로이지만 골이 깊고 호랑이가 설쳐 심장에 털난 사람이 아니면 출입을 꺼렸다. 이곳 주민들은 아랫재, 천문지골, 오심이골, 학심이골, 배넘이골을 통틀어 심심이골(深深谷)이라 하는데, 지리에 밝은 빠꿈이도 길을 잃기 십상이다. 심심이골은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정글지대이다. 이 골짜기를 드나들었던 어느 노승은 “길 잃는 심심이골, 신비한 학심이골, 호랑이 소굴 천문지골”이라 일갈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심심이골로 들어가고, 도를 닦으려면 도태정을 들고, 혈기를 키우려면 심심이골에 들어가야 한다.

밀양 표충사가 주는 화두, ‘괜히 왔네’

형제봉인 재약산, 천황산 아래에는 산중 가람 표충사가 있다. 깊은 산중에 자리 잡고 있어 일흔일곱 고개를 굽이굽이 돌아야 한다. 돌아서서 가신님이 돌아오신다는 도래재(回嶺), 이쪽저쪽에서 당일에 돌아갈 수 있는 가래나무골이 있다. 지금은 표충사 주변에 대나무 숲이 줄어들었지만 창건 당시에는 대나무 숲이 우거져 죽림사(竹林寺)로 불렸던 표충사 대밭에는 사자평을 드나들던 길손들이 목을 축였던 ‘소금쟁이새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다.

▲ 배성동 소설가
▲ 김성동 화가

표충사는 옥류동천과 금강동천 계곡에 묻혀있다. 이 계곡을 따라가면 천황산, 재약산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옥류동천에서 흑룡폭포, 층층폭포, 사자평을 거쳐 재약산, 천황산에 오른 후 금강폭포, 금강동천, 표충사로 회항 가능하다. 반면에 표충사에서 통도사 가는 길은 옥류동천에서 사자평을 거쳐 배내골로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 이 길은 곧장 영축산으로 이어진다.

통도사 뒷산인 오룡산 통도골(通度谷)은 걷기만 해도 도가 트는 길이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생사해탈을 한다는 통도사이다. 가파른 인생길을 걸어온 사람일수록 내려가기란 서운한 법이다. ‘가려니 섭섭하고 있으려니 괴롭다’는 표충사 혜각 스님의 입적송이 떠오른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자작 묘비를 세웠다. 영남알프스 4대 사찰 도보 순례길을 돌아본 부르튼 두 발이 말한다. ‘괜히 왔네….’

*영남알프스학교 다음 산행
6월25일(토) ‘배내골 철구소’
문의: 010·3454·7853, http://cafe.naver.com/ynalps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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