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일산동 등용사

▲ 수만 그루의 곰솔과 기암절벽이 동해바다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울산 대왕암공원의 길목에 자리 잡은 등용사(登龍寺). 솔바우산 중턱에 있는 등용사의 극락보전(極樂寶殿) 앞마당에는 해수관음보살상이 해 뜨는 대왕암 방향을 향해 미소 짓는다.

울산 동구 일산동의 대왕암공원을 찾았다. 울기등대 주변을 과거 울기공원이라 불렀는데 2004년 대왕암공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울산의 끝, 울기(蔚崎)에 자리하고 있다. 대왕암공원은 ‘제2의 해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다.

공원 입구에서 등대에 이르는 숲길에는 1만5000여 그루의 곰솔이 치솟아 있다. 대왕암, 용굴, 탕건암 등 기암절벽이 수려하고 동해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블록을 쌓은 듯, 퍼즐을 맞춘 듯 매우 정교하다. 대왕암공원 산책로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산책로는 4개 코스로 나뉘어져 있다. 구간별로 짧게는 1.8㎞, 길게는 3.6㎞에 달한다. 공원 입구에서 바깥마구지기를 시작으로 안마구지기, 해맞이전망대, 용추암, 고동섬 그리고 노애개안을 거쳐 슬도 소공원 등대에 이르는 길이다.

대왕암공원 주차장 남쪽에 위치
창건 60여년 된 해인사의 말사
네팔서 이운해 온 사리 등 봉안
울산시 문화재자료 6건도 소장
동지에 새해 해맞이 하는 명소

대왕암공원이 있는 일산동(日山洞)은 어떻게 생긴 이름일까. 울산의 동쪽 끝, 해가 뜨는 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줄 알았다. 그런데 일산동(日山)은 원래 일산(日傘)에서 이름이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신라시대에 이곳에 놀러왔던 왕이 햇볕을 가리려고 우산을 펼쳐놓고 즐겼다는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슨 사연인지 어느날부터 일산(日山)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어느 왕이 왔을까. 일산해수욕장 주변의 지명 유래나 전설을 보면 그럴법도 하다.

▲ 등용사 용왕각 위에 세워진 이색적인 종루.

어풍대, 여기암, 대왕암, 고늘개 등의 지명에 왕을 비롯한 왕족의 사연이 얼마나 많이 숨어있을까. 어풍대(御風臺)는 신라 왕들이 풍류를 즐긴 일산해수욕장 북쪽의 언덕을 가리킨다. 대동여지도에는 ‘무리롱산(無里籠山)에서 남쪽으로 뻗은 줄기가 남목천(南木川)과 어풍대(御風坮) 사이 4개의 봉우리’로 묘사돼 있다. 여기암(女妓岩)은 일산해수욕장 앞바다에 있는 바위섬으로, 기녀들이 노래하고 춤춘 바위라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또 신라 왕들이 궁녀들을 거느리고 뱃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마치 꽃놀이를 하는 것 같아서 화진(花津)이라는 지명도 생겨났다. 꽃놀이를 즐긴 바닷가라는 뜻을 가진 ‘꽃놀이 갯가’가 ‘고늘개’가 되었다. ‘고늘개’ ‘화진’이라는 이름은 거의 사라졌지만 학교 이름 등에 일부 남아 있다.

▲ 등용사 입구에서부터 오래된 곰솔과 대나무 숲이 반긴다.

대왕암공원 대왕바위 전설은 산라왕의 호국에 대한 간절함을 쉬 읽을 수 있다. 삼국통일을 이룩했던 신라 30대 문무왕이 제위 21년만에 승하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동해의 대왕석에 장사를 지냈더니 마침내 용으로 승천해 동해를 지키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장사를 지낸 문무왕의 해중릉이 사적 제168호로 지정돼 있는 경주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있는 바위다. 문무왕은 평소 지의법사에게 “죽은 후에 나는 호국대룡이 되어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문무왕 사후 왕비도 세상을 떠나 용이 되었다. 왕은 죽어서도 대룡이 되어 넋이 쉬지 않고 바다를 지키거늘, 왕비도 무심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왕비의 넋도 한 마리 큰 호국용이 되어 울산을 향해 동해의 한 대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곳도 대왕바위라 불렀고 세월이 흐르면서 대왕암 혹은 댕바위라 부른다는 것이다. 대왕암 길목 솟대는 왕비를 향한 애틋함인가 하늘을 향한 그리움인가. 왕비가 품은 호국의 간절함이 먼 세월을 건너와 흔쾌히 등을 내어주는 푸근함에 잠시 젖는다. 어풍대라는 높은 언덕은 동대(東臺)라고도 하며, 끝머리를 ‘동대끝’이라고 한다. 등대산 입구 등룡사 부근의 마을은 안동네라고 부른다.

등용사(登龍寺)는 대왕암공원 주차장 남쪽 끄트머리에 있다. 절까지는 200여m 거리다. 울산교육연수원 앞 해안가의 소바위가 눈앞이다. 전통사찰은 아니지만 고풍스런 분위기가 해무와 잘 어울린다. 솔바우산(일명 수레산 또는 소바우산) 중턱에 있는 등용사 해수관음보살상이 해가 뜨는 바닷가를 향해 우뚝 섰다. 2012년 5월25일 해수관음보살상 봉안 및 점안법회가 봉행됐을만큼 역사는 짧다. 갈매기들이 여름날 사찰 기와지붕 위로 날아간다. 절을 오가며 동해바다 파란 바다, 하얀 파도를 벗삼을수도 있겠다.

▲ 등용사 앞마당의 석탑과 해수관음보살상.

등용사는 60여년 밖에 안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을 지낸 운봉당 능관(能貫) 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지난해 2월5일 능관 스님의 부도탑이 등용사에 세워졌다. 등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다. 울산지역 대부분의 사찰이 통도사 말사인 점에 비춰 색다르다. 신라의 왕이나 왕비가 일산(日傘)에 놀러왔다가 잠시 쉬었을 수도 있는 터에 세워져 있다. 내불당을 세웠을만하다.

해인사는 불보사찰 통도사(通道寺), 승보사찰 송광사(松廣寺)와 더불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모시는 법보사찰(法寶寺刹)이다. 해인사의 말사는 전국적으로 170여곳에 이른다. 이 중 울산에는 등용사와 죽림정사(두서면 인보리) 2곳에 불과하다. 주지 본명(本明) 스님은 해인사 성보박물관장으로 있다.

등용사는 알년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에 새해 해맞이를 한다는 절이다. 네팔에서 이운해 온 사리와 불사 동참자들의 금강경 사경을 봉안하고 있어 피안의 의지처라고도 한다. 지난 1월에는 등용사가 소장 중인 불교전적(불교경전) 6건이 울산시 문화재자료로 가결돼 2월4일 지정고시됐다. 등용사에서 갖고 있는 ‘고봉화상선요’ ‘염불작법’ ‘선원제전집도서’ ‘지장보살본원경’ ‘현수제승법수’ 등 5건은 1600년대에 간행된 불교경전이다.

이 가운데 ‘선원제전집도서’는 선교일치사상의 주요 내용을 발췌한 내용이며 1681년 울산 운흥사에서 간행됐다. ‘지장보살본원경’은 지장보살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내용과 의식을 담고 있으며 1648년 언양 연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또 금속활자인 을해자본 계열자료로 법화경 판본계통 연구에 중요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묘법연화경’도 있다. 대왕바위 전설이 있는 대왕암공원의 한켠에 있는 등용사의 용은 어떤 사연을 품고 하늘을 오를까. 글·사진=박철종기자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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