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국내외 선진 사례를 배우다- (8·끝) 안전 울산 만들기

▲ 황산누출사고가 발생한 고려아연에서 방호복을 입은 작업자들이 사고처리를 하고 있다.

“황산이 한두방울 튈지 모르니 코팅 장갑을 끼라는게 전부였습니다. 만약 SK나 S-OIL, 삼성 등에서 같은 작업을 했다면 당연히 방산피복을 지급했을테고 이렇게까지 다치지 않았을 겁니다.” 최근 황산 1000ℓ가 누출돼 협력업체 근로자 6명이 다친 고려아연 사고를 지켜본 한 근로자의 분노 섞인 목격담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관리대상 유해물질인 황산을 다루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협력업체인 한림이엔지는 근로자들에게 보호장비로 일회용 마스크와 코팅 장갑, 보안경 등만을 지급했다. 값비싼 방산피복은 빠졌다. 원청업체인 고려아연 역시 보호복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작업하는 협력업체 근로자를 제재하지 않았다.

원청인 고려아연이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모든 근로자에게 방산피복을 입도록 지시했다면 생명이 위급할 정도로 근로자가 다치는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라는게 목격자들의 증언이다. 이번 고려아연 사고를 명백하게 인재(人災)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려아연 사고는 명백한 인재
전국 최고 수준 안전교육에도
안전불감증에 따른 사고 여전

◇안전교육 진화하지만 인재 사고 여전

산업수도로 불리는 울산에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교육도 전국 최고 수준으로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기업체 관리감독자를 대상으로 산업안전 지식 수준을 알아보는 ‘퀴즈대회’(산업안전보건 골든벨을 울려라)부터 안전 우수사업장과 그렇지 못한 사업장을 묶어 안전 수준을 함께 높이는 ‘멘토·멘티제도’, 각 기업별 안전 노하우를 다른 기업과 나누는 ‘안전지식 공유장터’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이 주도한 전국 최초의 안전교육 방식이다.

사고 사업장에 대해선 엄격하게 처벌한다. 울산노동지청은 기존 사고 작업장의 경우 설비 안전이 확보되면 작업중지권을 해제했지만 올해 잇따라 근로자 사망사고를 낸 현대중공업에는 사고 예방을 위한 방안 마련 및 이행 등을 약속받은 끝에 작업재개를 허용했다. 당시 사고 사업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심화학습과 교육을 거쳤고, 시험과 면담을 통과한 뒤 작업중지 명령이 해제됐다.

▲ 고려아연 황산누출 사고현장에서 부상을 입은 근로자가 착용했던 작업복과 장갑, 안전화가 바닥에 놓여있다.

하지만 안전불감증에 따른 사고는 여전하다. 울산노동지청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울산지역 산업현장에서 254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연간 사고사망자 평균이 42.3명이다.

같은 기간 재해자 수는 총 1만7245명, 연 평균 2874.2명이다. 2011년 2929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지난해 2783명까지 감소했다. 재해율 역시 2011년 0.74에서 지난해 0.52로 줄었다. 사고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사고에 따른 사망자)은 2010년 1.46에서 2012년 1.59로 뛰었다가 지난해 0.96까지 낮아졌다.

수치로만 보면 사고사망만인율이 낮아지고 있지만 근로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이 여전히 멀다. 산업안전에 있어 전세계를 통틀어 최고 선진국으로 꼽히는 영국은 사고사망만인율이 2010년 0.050명, 2011년 0.060명, 2012년 0.058명, 2013년 0.050명, 2014년 0.045명, 2015년 0.046명이다.

지난해 영국에서 근로자 20만명 당 한 명 꼴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면 울산에선 1만명 당 한 명이 사고로 사망한 셈이다.

올해 들어서만 5명의 근로자가 사망한 현대중공업은 늦은 감이 있지만 ‘사고를 막겠다’는 CEO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인건비 부담, 공정지연 등의 손실을 감수, 하루 조업 중단에 이어 모든 작업장의 위험요인을 재점검했다. 강력한 처벌을 동반한 ‘절대안전수칙’도 7월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 필 스캇 CIA(영국화학산업협회) 안전 책임자

인터뷰 / 필 스캇 CIA(영국화학산업협회) 안전 책임자
“비용 때문에 안전 외면…적정가 낙찰 필요”

1960년대 건설된 울산국가산업단지는 전국 산단 중 노후화가 가장 심해 사고 가능성도 높다. 안전대책을 제대로 수립하면 타 시·도 산단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울산의 역할이 중요하다.

산업수도 울산이 전국 최고의 산업안전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듣기 위해 영국 화학분야 사용자 단체인 CIA(영국화학산업협회) 필 스캇 안전 책임자를 만나봤다. 영국 최대 산별노조인 ‘유나이트 더 유니온’이 본보의 기획취재의도를 들은 뒤 CIA를 추천해 인터뷰가 성사됐다. 노동자측 단체가 사용자측 단체를 소개한 것 자체만으로도 본보 취재진은 ‘안전에 있어 노사가 따로 없다’는 영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화학 사업장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일해야 한다는 인식을 CEO를 포함한 전 직원이 가져야 한다. 각자의 역할이나 임무에 맞는 안전 활동이 있어야 전체적인 안전대책이 완성된다.”

-한국에선 하청업체 직원이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청 사고 책임을 원청에게도 똑같이 부여해야 한다. 그래야 원청이 하청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게 된다. 비용 때문에 안전을 도외시할 수 있기 때문에 영국처럼 최저가가 아닌 적정가 낙찰 방식을 추천한다. 혹시라도 사고가 발생했다면 이와 유사한 사고가 어디에서라도 재발하지 않도록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예방 방법을 전파해야 한다. CIA는 이런 활동도 하고 있다.”

-정부의 관리감독은 어떤지.

“안전점검에 있어선 안전보건청(Health snd Safety Executive)이 거의 담당한다. 물론 환경청(Environment Agency)에서도 일부 담당한다. 관리감독 권한이 여러 기관에 나눠져 있으면 중복 점검이 생길 수 있고, 사각지대도 발생할 수 있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관리감독 기관을 단일화해 전문 점검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글=이왕수기자 wslee@·사진=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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