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흑삼 품은 삼계탕과 백숙, 울산봉황

 

삼계탕은 영계의 배 속에 인삼, 찹쌀, 마늘, 대추를 넣고 푹 고아 만드는 탕요리다. 인삼(삼·蔘)과 닭(계·鷄)이 합쳐진 말이다. 언제부터 삼계탕을 먹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초기 철기시대 이후 닭이 식용으로 사용됐고, 백제시대 들어와 인삼을 일본에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닭을 고아 원기 회복 음식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아마도 고려 이전부터 닭과 인삼으로 만든 요리가 있었으리라 추측만 할 뿐이다. 1670년 쓰여진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에는 연계찜(영계찜)과 수증계(닭찜) 조리법이 나와있다. 1942년 발간된 조선요리제법은 지금의 삼계탕과 거의 비슷한 백숙 조리법을 알려주고 있다. 오랜 세월 조금씩 명칭이 달라져 내려왔지만 삼계탕은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온 약식동원(藥食同源) 사상, 즉 좋은 음식은 약과 같다는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음식이다.

▲ 닭요리 전문점 ‘봉황’ 이미옥 대표가 흑삼과 전복, 낙지 등이 들어간 봉황삼계탕을 설명하고 있다.

울산시 남구 삼산동 닭·오리요리 전문점 봉황은 개점한 지 2년이 채 안된다. 식당 주인은 권오복·이미옥씨 부부다. 봉황은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문전성시를 이루더니 최근에는 동구 방어진에 제1호 분점까지 열었다. 삼계탕에 반한 식도락객들이 입에서 입으로 ‘맛소문’을 내면서 봉황삼계탕의 진가를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45년간 전국 명산 떠돌던 심마니
칠순 바라보는 나이에 차린 삼계탕집
약초육수는 담백한 닭고기와 환상 궁합
문 연지 2년도 안돼 분점 낼 만큼
보양식 찾는 식도락가들에 입소문

이렇게 된 데는 깔끔하기 그지없는 여주인장의 조리 솜씨가 일등공신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되는 비결이 있다. 45년 간 명산을 오가며 ‘한국토종 천연산삼’만을 연구해 온 권오복 대표가 산삼과 산약초에 관한 산 지식을 삼계탕 한 그릇에 뜨끈하게 녹여내고 있다.

봉황 주방에는 육수를 우려내는 대형 탕기 2기가 큰 자리를 차지한다. 늦은 밤 식당 문은 닫아도 탕기 속 육수를 달이는 가스렌지 불은 꺼지지 않는다. 365일 24시간 우려내는 탕기 속에는 권 대표가 가려낸 10여 가지 산약초가 수북히 들어간다. 여기에 황기, 유근피, 황백피와 같은 다수의 약재가 추가된다. 일명 ‘약초 육수’다. 삼계탕 뿐 아니라 봉황에서 만드는 모든 요리에는 이 육수가 들어간다. 깊은 맛이 오래 가는 특별함이 그 속에 담겨있다. 그 맛에 매료된 단골들은 삼계탕이나 백숙요리를 맛볼 때마다 2~3주전자씩 약초육수를 더 주문한다. 닭고기를 먹으면서 한 주전자, 목이버섯과 부추를 넣어서 또 한 주전자, 마지막 찰밥으로 죽을 끓일 때도 어김없이 한 주전자가 더 추가된다.

여름보양식 봉황의 백숙요리에는 비결이 또 하나 있다. 봉황 백숙에는 주재료인 닭과 함께 낙지, 전복, 능이, 대추, 인삼채, 부추, 은행, 잣, 당근과 마늘쫑 등 갖가지 부재료가 큰 냄비 속에서 약초 육수와 어우러진다. 여기에 여느 식당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흑삼’까지 들어간다.

▲ 권오복 봉황 대표가 삼계탕 전문점 봉황 매장에 마련된 산삼전시실에서 40여년간 심마니로서 캐온 산삼 수백종 중 2억원 상당의 산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부재료 중 하나인 흑삼은 인삼을 아홉번 찌고 말리기를 반복해서 만든다. 모든 과정은 삼(蔘)의 달인 권 대표의 주문에 따라 여주인장 이 대표의 손맛을 거쳐 완성된다. 귀한 흑삼을 입에 넣으면 처음에는 양갱처럼 쫀득거리다가 어느 순간 입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삼 특유의 쓴맛은 사라지고 그 속에 든 영양은 극대화한 것. 담백한 닭고기와 깊은 맛의 약초 육수도 그저그만이다.

권 대표는 칠순을 바라본다. 오랜 기간 전국의 명산을 오가면서 음양오행 및 각종 한학에 관심을 둬 오랫동안 공부를 했다. 늦은 나이에 삼계탕집을 개업하게 된 사연에 대해 그는 “심마니도 먹고 살아야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깊은 속뜻은 따로 있다. 그는 “삼을 발견하고 캐는 지식, 경험, 수고에 비해 제대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심마니도 점점 자취를 감추고, 그에 따라 한국산 천연산삼마저 줄어들어, 이제는 수입삼이 들어와 한국삼인양 매매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한탄했다. 더불어 “삼과 가장 어울리는 삼계탕은 산 생활에서 터득한 삶의 철학을 담아내기에 가장 안성맞춤이며, 이를 통해 우리 약초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알리는데 더 큰 뜻이 있다”고 말했다.

 

식당 출입구에 꾸며진 산삼 진열 공간은 그의 자부심이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진열장에 전시된 유리병마다 그가 캔 산삼이 정갈하게 보관돼 있다. 그 중에는 지난 1992년 발견한 100년 된 산삼도 들어 있다. 한 병에 한 뿌리씩 들어있는 유리병은 어림잡아 500여개가 넘는다. 본점 말고 동구점에는 이 보다 더 많은 유리병이 전시돼 있다. 커다란 옹기도 12개나 있다. 각 옹기마다 200~300뿌리의 산삼으로 담근 산삼주가 들어있다.

권 대표는 “우리 것이 잊혀지지 않도록 산삼을 테마로 한 전시관을 갖는게 목표”라며 “몸에 좋은 요리와 우리 삼을 제대로 알리면서 즐겁게 인생을 보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메뉴는 삼계탕, 닭곰탕, 닭·오리백숙, 닭·오리불고기, 초계국수 등이 있다.

글=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사진=임규동기자 photolim@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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