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밀양 만어사(萬魚寺)

▲ 밀양 만어사 미륵전 앞에 펼쳐진 ‘만어산 암괴류’. 수많은 물고기 떼가 돌로 변했다는 전설을 가진 어산불영(魚山佛影) 돌무더기다. 검은 돌들은 폭 약 100m, 길이 약 500m 규모로 만어산 골짝을 빼곡 메운다.

경남 밀양 만어사(萬魚寺)의 신비로운 전설을 찾아 나섰다. ‘내비’ 아가씨가 삼랑진읍사무소에서 13.4㎞, 40여분이 걸린다고 알려준다.

송지사거리에서 천태로(路) 삼랑진역·양산 방면으로 우회전해 600여m를 직진하다 만어로(路)로 좌회전했다. 이어 단장로(路)로 접어들어 염동·단장면 방면으로 우회전 후 외길 지방도로를 따라 달렸다. 우곡리·만어사 표지판과 함께 두 갈래로 길이 나뉜다. 왼쪽 산으로 이어진 시멘트 길을 따라 4㎞남짓 가면 목적지다.

가벼운 마음으로 만어사를 찾아나섰지만 경사가 심한데다 아리랑고개가 예사롭지 않다. 길도 차량 교행이 힘들고 주차할 만한 공간도 마땅찮다. 만어산(萬魚山, 670m)의 높이를 가볍게 볼일이 아니었다. 여유롭게 걷기는 애초에 포기하기로 했다. 만어사 주차장까지 승용차 신세를 끝까지 져야 했다.

삼국유사에 수로왕 창건설 수록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너덜지대
불법에 감화받은 용과 물고기가
산으로 모여 돌로 변했다는 전설
미륵전엔 용왕 아들이 변한 바위

밀양 만어사는 46년(수로왕 5)에 가락국 시조인 수로왕(首露王)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의 사찰이다. <삼국유사> ‘탑상(塔像)’편의 ‘어산불영(魚山佛影)’조에 만어사 창건과 관련된 기록이 전해진다.

‘만어산은 먼 옛날 자성산(慈聖山) 또는 아야사산(阿耶斯山)이었고, 그 옆에 가락국이 있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바닷가로 내려온 알이 사람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니 그가 곧 수로왕이다. 현재 경남 양산 땅의 옥지(玉池)라는 연못에 독룡 한 마리와 다섯 악귀가 서로 사귀면서, 농민들이 애써 지은 농사를 망치는 등 온갖 행패를 부렸다. 이에 수로왕이 주술로 그들을 제거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부처님께 설법을 청해 오계(五戒)를 받게 했다. 이때 동해의 수많은 물고기들과 용들이 불법의 감화를 받아 산중으로 모여들어 돌이 됐고, 돌에서는 신비로운 경쇠 소리가 났다. 수로왕은 이를 기리기 위해 절을 창건했다. 돌이 된 수많은 고기떼의 의미를 살려 만어사라 부르게 됐다.’

▲ 미륵전 좌대에는 ‘미륵바위’가 앉아 있다. 잉어나 밍크고래를 닮았다거나 물고기가 입질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등 보는 이에 따라 달라진다.

만어사 주차장에 내리자 너덜지대가 기다리고 있다. 물고기 떼가 변했다는 어산불영(魚山佛影)이라는 돌무더기다. 수많은 물고기들이 돌로 변했다는 만어석(萬魚石)이 첩첩이다. 검고 어두운 색의 섬록암 내지 반려암으로 알려져 있다. 이 돌은 보통의 화강암보다 철과 마그네슘 성분이 많다. 같은 마그마라도 땅위로 분출하면 현무암이 되고, 땅 속에서 굳으면 반려암이 된다고 한다.

미륵전(彌勒殿) 앞으로 펼쳐진 만어석은 천연기념물 제528호 ‘만어산 암괴류’로 불린다. 지금도 돌을 두드리면 맑은 소리가 나 ‘종석(鐘石)’ 또는 ‘경석(磬石)’이라고도 한다. 이들 만어석은 다른 돌보다 유난히 무겁고 야물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 세종때 ‘종경’(鐘磬)이라는 악기를 만들려고 채집해 시험했으나 음률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고 전한다.

▲ 대웅전 앞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에 미륵전을 향해 앉은 돌부처와 그 앞의 문댐돌이 눈길을 끈다.

만어사는 신라시대에는 왕이 불공을 드리는 장소였다고 한다. 그리고 대정(大定) 20년 경자(庚子) 즉, 1180년(고려 명종 10년)에 중창되었고, 1879년에 중건되었다. 가락국이나 신라의 왕이 다녀갔다고 믿기에는 고색창연하지 않고 오히려 단아하다. 대웅전, 미륵전, 삼성각(三聖閣), 요사채, 객사(客舍) 등 절집은 소박조촐하다.

만어사와 관련된 전설은 또 있다.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자신의 명이 다한 것을 깨닫고 낙동강 건너 무척산의 신승(神僧)을 찾아가 새로 살곳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했다. 신승은 용왕의 아들에게 가다가 멈추는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일러주었다. 용왕의 아들이 길을 떠나자 수많은 물고기가 그의 뒤를 따랐다. 그가 멈춘 곳이 만어사였다. 만어사에 이르자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 돌로 변했고, 그를 따르던 수많은 고기들도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고 한다.

▲ 밀양 만어사 삼성각 옆으로 근래에 세워진 마애불이 온화한 미소로 절터를 지키고 있다.

만어사에 닿으니 믿기지 않는 두 전설이 사실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크고 작은 돌이 널브러져 있는 만어산에 만어사가 푹 안겨 있다. 너덜지대는 그 규모도 장관이지만 돌 하나하나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다. 검은 돌들은 폭 약 100m, 길이 약 500m 규모로 골짝을 빼곡 메운다. 서너 개 중 한 두어 개는 두드리면 쇠종 소리가 난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김해 진영에서 아들과 함께 왔다는 한 주부는 신혼초 남편과 왔다가 경험한 신비감을 잊지못해 다시 찾아왔다고 했다.

만어사는 오랜 역사만큼 고색창연한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만어석의 신비를 확인하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느티나무 마당에 앉아 있으면 많은 소리가 귀를 스쳐간다. 만어석을 두드리면 난다는 맑은 종소리, 스님이 정갈하게 비질하는 소리, 우거진 느티나무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까지….

▲ 대웅전 앞에 있는 밀양 만어사 삼층석탑. 상륜부가 없어진 부분에 별개 석재로 다듬은 구슬모양 보주를 얹었다.

만어석에 온 정신을 빼앗겼다가 미륵전을 놓칠 뻔 했다. 미륵전은 만어사 경내에서 가장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미륵전에는 불상이 없다. 부처의 불상이 앉았을법한 좌대에는 커다란 자연석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있다. 붉은빛이 감도는 높이 5m 크기의 이 자연석은 ‘미륵바위’ ‘미륵불상’이라고 불린다.

전설 속 동해 용왕의 아들이 변한 돌이라고도 하고, 자연석 표면에 붉은색이 감도는 부분이 가사(袈裟)처럼 보인다고도 한다. 주지스님은 잉어를 닮았다거나 물고기가 입질하는 모양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밍크고래가 몸을 세운듯이 보였다.

미륵바위 앞에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쌓아올린 돌탑 무더기가 있는 바위 아래쪽 틈으로 작은 샘이 보인다. 이 샘물은 낙동강의 조수에 따라 물 높이가 달라진다고 회자된다.

대웅전과 주차장 사이 넓은 마당에 서있는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에는 돌 의자가 있다. 수로왕이 방문했을 때 앉도록 급히 만든 의자가 아닐까. 다른 느티나무 아래에는 미륵전을 향해 앉은 돌부처와 그 앞의 동그란 문댐돌이 눈길을 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문댐돌이 닳을대로 닳았다. 미륵불 기도 영험도량이라더니….

돌 바다를 이룬 너덜지대의 장관과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낙동강의 전망도 좋다. 만어석을 두드리면 만어산 골짝 곳곳에서 메아리가 울려퍼질듯 하다. 그 울림이 커진다면 수많은 고기떼가 다시 찾아올까. 만어사 앞마당에서 산사음악회라도 열어 만어석들의 화음을 감상해보는 것도 좋겠다.

글·사진=박철종기자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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