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결여된 억지감동 강요보다
지금 젊은세대에게 진정한 멘토는
능력 발휘하도록 기다려주는 사람

▲ 최건 변호사

최근 몇 년 간 ‘멘토’(Mentor)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멘토’의 사전적 의미는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스승’이다. 이른바 롤 모델(Role Model)과 비슷하다. 사전적 의미로만 놓고 보면 멘토라는 단어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러나 흔히 정치, 사회 각 분야에서 ‘멘토’ ‘멘티’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멘토라 불리거나 스스로 자신을 멘토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젊은 세대들의 취업 문제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사회가 고령화되고, 국가의 경제성장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현재 대학생들을 비롯한 젊은 세대들은 과거에 비해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또한 소위 ‘스펙’을 중시하는 사회 현상 때문에 취업을 위해서 취업준비생들에게 전공 공부 외 다양한 활동이 요구되고 사회 진출도 과거보다 늦어지게 됐다. 이러한 현실 하에 일부 사람은 젊은이들의 힘든 현실을 위로하겠다며 스스로를 멘토라 칭하기 시작했다. 또한 여러 방송에서도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이 젊은 방청객을 상대로 강연을 하는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이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은 방청객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말하면 사회자 또는 강연자들이 ‘걱정하지 마라’ ‘다 이해 한다’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방청객들은 이에 공감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종전과 다른 것은 분명하다. 과거 명망이 있거나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나는 열심히 일해서 성공을 하였다. 여러분도 나처럼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계몽적인 방식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조언을 했다. 그런데 현재 멘토들의 그것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며 청자에게 감동을 주려 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당신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당신들이 지금 어려운 것은 기성세대의 잘못이다”고 한다. 일견 시대의 화두인 ‘소통’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필자가 보기에는 그리 바람직하거나 순수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멘토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유명인이거나 자신의 분야에서 일시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재능과 노력을 인정하는 것은 별개 문제로 하고 과연 그들을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스승’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성공을 논한다는 것도 매우 성급해 보인다. 수 년 뒤에도 그들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젊은 세대들의 어려운 현실이 기성세대의 잘못이라는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다. 어느 시대, 어느 세대건 그 나름대로의 아픔과 힘든 현실이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막연히 현재 어려운 현실은 기성세대들의 무조건적인 잘못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이다. 또한 모든 사람은 각자 고유한 라이프스타일이 있다. 별 다른 지식과 경험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타인의 인생에 대하여 쉽게 논하고 별 다른 고민 없이 조언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주제넘은 행동일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멘토라는 사람들의 진정성이다. 일부는 많은 강연료와 인세를 받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허위와 과장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일부는 토크 콘서트 등의 강연에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감성팔이’를 하면서 일방적인 주장을 개진하기도 한다. 현재 젊은 세대들에게 진실로 필요한 멘토는 진정성이 결여된 억지 감동을 강요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그들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묵묵히 기다려주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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