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 무시·무단횡단 사고 급증
나와 가족의 안전위해 여유 가져야

▲ 오용석 울산지방경찰청 교통계장

옛날 중국에 추앙추라는 유명한 화가가 있었다. 어느 날 황제가 그에게 게 그림을 하나 그려달라고 했다. 추앙추는 열두 명의 시종과 집 한 채 그리고 5년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5년이 흘렀으나 그는 아직 그림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추앙추는 5년을 더 달라고 했고 황제는 이를 수락했다. 10년이 거의 지날 무렵 추앙추는 붓을 들어 먹물을 찍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단 하나의 선으로 게를 그려내니 마치 그 게가 살아 종이 밖으로 기어나갈 듯 완벽했다고 한다.

이렇게 만족할 만한 작품을 얻기 위해서는 느리지만 기다림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예로부터 양반문화, 선비정신을 강조하면서 모두가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왔다. 양반은 비가 와도 뛰지 않고 느릿느릿 걸으며 서두르지 않는다. 한마디로 느림과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1960~1970년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경제발전을 위해 ‘빨리빨리’ 문화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앨빈토플러는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가 기업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았고 최첨단 신기술을 다른 나라보다 한 발 앞서 개발할 수 있는 풍토를 제공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의 운전습관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많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조금만 늦게 출발해도 연쇄적으로 경적을 울려대고, 운전대만 잡으면 헐크로 변하는 운전자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빨리 가기 위해 신호를 무시하고 보행자는 무단횡단을 선택한다. 단속카메라가 있으면 그 장소만 피하고 이후는 제한속도를 넘기기가 일상화 됐다.

그 결과 올해 초 호남고속도로 22중 추돌사고, 2015년 영종대교 106중 추돌사고, 2006년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 등 대형사고가 끊이질 않았고, 울산에서도 출퇴근 시간대 신복로터리 등 주요도로는 꼬리물기로 상당한 정체가 발생하고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경제규모에 맞는 시민의식과 아울러 무엇에 쫓기듯 하는 조급함을 버리고 한 치의 여유를 가지고 생활하는 느림의 철학을 가져야 한다.

2000년대 초에 비해 교통사망사고가 점차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OECD 수준에 비하면 최하위 수준이고, 특히나 후진국형 사고로 여겨지는 보행자 사고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경찰에서는 보행자 사고 감소를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에 있다. 주요도로의 제한속도를 낮추고, 근거리에 횡단보도가 있지만 보행동선을 고려해 횡단보도를 추가 설치하고 있다.

또한 ‘시민과 함께하는 안전·안심 프로젝트’를 추진, 야간 보행자 안전 취약지역에 횡단보도 투광기를, 무단횡단이 많은 지역에는 안전펜스를 설치하고, 교통캠페인과 안전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울산지역에서는 올 들어 전체 교통사망사고(-42%)와 보행자 사망사고(-60%)가 획기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그렇지만 도로에서는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가 안전운전, 안전보행 하는 습관이 몸에 배일 수 있는 여유가 좀 더 필요하다.

최근 들어 슬로시티, 슬로푸드 등 느림의 문화가 서서히 조성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된다. 도로에서 만큼은 빨리빨리 앞만 보고 달려가기보다 옆과 뒤도 되돌아 볼 수 있는 한 템포 느린 운전습관, 도로를 무단횡단하기 보다는 조금 늦더라도 횡단보도로 건너가는 보행습관이 필요하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빠르게 달리다가도 세도나(Sedona 인디언 성지)에서 꼭 멈춰 쉰다고 한다. 너무 빨리 달려 혹시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기다리는 것이라고 한다.

오늘 이후부터라도 쫓기기보다 서두르지 않고 조금의 여유를 가지면서 운전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모두가 보다 더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오용석 울산지방경찰청 교통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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