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식 건축에는 유연한 잣대대고
한옥은 2층 이하 제한한 탁상행정
9층 목탑 짓던 한옥기술 퇴보원인

▲ 김훈 경주전통한옥학교장

21세기 가장 중요한 경제화두 중의 하나는 바로 ‘문화’다. 문화의 보전·보존이든, 확대 재생산이든, 문화가 가진 경제적 가치는 이미 다양하게 입증되고 있다. k-pop이 가진 경제효과가 웬만한 대기업보다 더 실속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만이 가진 문화 콘텐츠 중에서 과연 k-pop을 능가하는 것은 없을까? 절대적인 해답은 될 수 없어도, ‘한옥’이 바로 그러한 콘텐츠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자리하기에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옥은 오랜 세월 내려온 말 그대로 한국인의 집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한옥은 감옥과 같다. 그 감옥을 만드는 것은 잘못된 각종 규제와 법령이다. 정부에서는 기업을 위한 온갖 규제는 풀면서 개념을 모르는 사람들이 저지른 탁상행정을 고치려 들진 않는다.

오늘은 그 중에서 우선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울산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도시에서 한옥 건축물의 높이는 2층 이하로 제한되고 이는 조례 등으로 명시되어 있다. 이는 심지어 가히 한옥의 도시라 할 수 있는 경주에서조차 엄격히 적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흔히 그들이 내세우는 층수나 높이 제한에 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화재에 취약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양옥, 한옥을 가리지 않고 화재 발생 시 가장 큰 피해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부분 유독가스 발생에 따른 질식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한옥은 양옥보다 훨씬 친환경 소재를 많이 쓰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설득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2층을 넘어서는 전국의 한옥 호텔 등을 비롯한 숱한 건축물들은 철골로 뼈대를 세우고 겉 부분만 한옥의 형태를 띄는 기형적인 외형을 연출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문화재가 주변에 있을 경우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문화재 구역 주변 500m에 대한 건축을 까다롭게 하거나 아예 건축 자체를 못하게 하기도 한다. 여기에도 법의 맹점은 있다. 즉, 문화재 구역에서 적당히 떨어진 곳에는 고층 아파트도 쉽게 허가가 난다는 것이다. 500m 이내 있는 2층 이상의 한옥이 문제가 되겠는가, 아니면 1000m 떨어진 곳의 20층 이상의 아파트가 더 문제가 되겠는가? 이는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다. 언뜻 봐서 잘 표시도 나지 않는 고인돌 몇 개를 유적지, 문화재로 지정하여 근처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면서 대형 건설사들의 고층건물의 신축에 대해서는 어찌 그리도 유연한 태도를 취하는지 참으로 알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경주 불국사 앞에 건설되고 있는 모 건설사의 고층 아파트 신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비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공사는 원활(?)하게 잘 진행되고 있다. 악착같이 경관을 해치면서.

서양식의 건축물 형태는 서양건축을 전공한 수많은 건축가들과 이권이 큰 것을 알고 있는 대형 건설사들에 의해 승승장구하며 그 기술 또한 빛의 속도로 발전되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의 한옥 건축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논리와 규제에 막혀 실제 기술력이 점점 떨어지는 퇴보현상을 겪고 있다.

9층목탑을 짓던 우리 한옥건축의 대단한 기술은 2층밖에 지을 수 없는 제약 속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여 백제 문화단지의 소규모 목탑이 그나마 고층탑으로 재현되었고 앞으로는 경주 황룡사 9층목탑이 또 어떤 모습으로 재현되어 형상화될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목구조로 고층을 짓는 기술력이 현재 가능함을 인정한다면 일반 한옥건축물도 고층 신축이 가능하게 관계법령을 바꿔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소방법 등 화재와 관련한 사항도 재검토하고, 도시 미관위원회 같은 것도 만들고 상설화시켜서 과연 어떤 건물이 더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건지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통문화를 살리고, 이를 현대화시켜 현대인의 입맛에도 맞는 한옥 건축물이 도시를 아름답게 채울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김훈 경주전통한옥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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